집착과 변화
나는 이렇게 온라인에 불안에 대해서 글을 쓰면 내 불안이 조금 줄어드는 것 같아 다시 글을 쓴다.
나는 건설업계의 한 회사를 다니고 있다. 첫 직장이었고 다닌 지는 1년이 채 안되었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충분히 많은 것을 지금까지 배웠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대기업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대형 건설사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대기업의 신입 공채를 써보려고 한다.
지금 다니는 직장 분들에게 조금 미안하기도 하다.
다들 잘해주셨고 고맙다. 그리고 내가 휴가를 쓰며 다른 직장을 준비하는 것을 알아채면 어떻게 생각할지 조금 걱정이 된다.
만약 내가 이번에 공채를 모두 떨어지면 나는 다시 이 회사를 다니게 될 것 같은데 그것이 걱정이다.
사람들은 내가 걱정이 너무 많다고 한다. 나는 정말 걱정을 사서한다.
나는 유튜브에서 홍익학당을 종종 본다. 여기서 정말 좋은 삶의 자세를 알려준다.
내맡기는 삶.
내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는 삶.
이런 삶의 자세를 가지면 참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실로 우리의 감각과 지각능력은 너무도 제한적이고 우리의 생각은 조악한 언어의 잡음일 뿐이다.
이 상황에서 이 우주의 현상인 삶을 통제한다는 것은 가히 불가능하다.
나는 이것을 이해하고 또 이해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나는 여전히 이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삶을 살지는 않는다.
나는 욕심이 아직도 있다. '그래도 이 정도는 원한다.' 이 마음이 불안의 원천이다.
'이 정도는 원합니다. 이건 좀 되게 안 되나요? 그 나머지는 하나님 맘대로 하세요 이런 느낌이다.'
완전히 맡기기는 정말 어렵다. 하지만 이 점에서는 완전히 맡기거나 아니면 안 맡기거나 이 둘밖에 없는 것 같기는 하다.
나는 정말 내맡기는 삶을 정말로 살고 싶다. 이 삶을 위한 연구를 얼마나 해왔던가?
그러나 내가 돌아볼 때, 나는 결코 내 맡 기지를 못했다.
항상 욕심으로 걱정과 불안 속에 살았다.
나 자신을 증명하고 인정받으려는 욕심에 나는 대자연과 하나가 되지 못했다.
언제나 분리된 채 두려움에 떨며 겨우겨우 살았다.
나는 정말 운도 좋고 좋은 사람도 곁에 많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충분히 즐기지를 못했다.
마이클 싱어라는 사람의 책과 글, 강의도 이 내용을 강조한다.
모든 것에 판단을 중지할 것. 이 사건이 내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판단하지 말 것.
사실 실로 어떤 것이 좋은지 나쁜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어떤 모델 내에서 나쁜 것과 좋은 것은 생길 수 있지만 그 모델의 전제가 되는 가치체계가 진정으로 좋은 가치인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전 우주적 규모에서 우주는 항상 우주가 좋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 수밖에 없다.
우주의 가치체계를 알고 있는가? 나는 모른다. 따라서 우리의 제한된 가치 체계는 우주와 갈등을 일으키고 폭력을 발생시킨다.
그러나 우리가 판단을 모두 내려놓을 때, 폭력도 사라지고 갈등도 사라지며 평화가 찾아온다.
무엇이 내게 최선인가? 우리는 모두 모른다. 그래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해서 수용하고 받아들이며 판단을 저 멀리 보류하는 길 밖에는 없는 것이다.
마윈에게 취업이 되는 것은 행운이었을까? 그 좋아 보이는 것이 그의 삶을 제한하는 것으로 작용하지는 않았을까?
AI를 학습하며 생기는 Local Minimum에 모델이 빠지듯, 우리도 삶에서 Local Minimum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이때 모델을 Local Minimum에서 나오게 하기 위해 무작위적 충격을 준다. 마치 우리 삶에 충격이 오듯 말이다.
자연은 우리가 유연하고 집착 없이 사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것 같이 언제나 고정된 무엇은 변화시킨다. 그 어떤 것도 일정하게 고정되어있지 않다. 끝없이 변하고 그래서 충격은 언제나 일상적으로 우리에게 온다. 다만 이 충격이 너무 크지 않도록 일상에서 이 충격에 대비해 조금씩 조금씩 변화를 인식하고 그에 적응하고 변화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하지만 너무도 자주 우리는 결코 변화를 인식하지도 않으며 무시한다.
끊임없이 변하고 변해야 한다. 그리고 그 변화를 쉽고 자연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변하지 않는 것이 이상한 것이다.
쉬지 않고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 바꾸는 데 최고는 버리는 것이다. 버리면 새 것이 찬다. 지식도 버리고, 인간관계도 정리하고, 돈도 쓰자. 그럼 새로운 생각, 사람, 돈이 흘러 들어온다.
고착되고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성장이 멈추고 충격이 다가온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작은 충격을 미리 만들어 자신을 비우고 또 채워야 한다. 이것을 쉽게 하는 법은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다. 모든 것에 대해서 집착을 내려 놓아야 한다. 집착은 비우는 것을 어렵게 하고 변화에 저항하여 고통을 일으키는 근원이다. 놓고 또 놓자. 특히 정신적 구조물을 놓아야 한다. 정신적 습관을 버리고 완전히 중요성을 내버리는 연습을 끝없이 해야한다.
가장 좋은 것 중 하나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다. 죽음을 생각하면 정신적 구조물들의 가치가 거의 사라진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다양한 것들이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음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 허무 속에서 진정한 자신의 가치가 태어난다.
내 삶을 마무리 하는 순간,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 죽는 순간의 내가 무슨 말을 할 것 같은가? 내게 대기업 공채를 두려워하라고 할까? 아니면 편안하게 삶을 즐기라고 할까? 결국은 모든 것은 소멸하기 마련이다. 불안이 무슨 의미인가? 그저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결과를 받아들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