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houghts

AI와 대한민국의 미래 산업, 그리고 정신문명

OverMan 2024. 5. 27. 17:31

나는 MS의 Copilot의 기능을 오늘 보고 놀랐다. 드디어 AI로 인해 산업 전반이 영향을 받고 교육과 경영의 패러다임이 바뀔 수 밖에 없는 시대가 왔다. 지금까지 우리는 변화는 있었지만 근본적인 패러다임에 있어서는 변하지 못했다.
 
교육에서는 여전히 신기술을 사용하고 새로운 기술과 새로워진 지식들을 가르쳤지만 그것들을 가르치는 방식과 그것들을 바라보는 관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식은 양적 축적의 대상이었고 평가는 그 양적 축적을 얼마나 능숙하게 하는지에 달려있었다. 이제는 지식의 양적 축적이 더이상 의미가 없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예전부터 경영은 복잡한 서류와 규정들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졌다. 이 시스템을 위해서 매우 많은 비효율적 에너지가 소요되었다. 종이, 서류공간, 규정에 대한 해석과 그에 따른 서류 작성 등 수많은 시스템 자체의 비효율적인 소비가 이루어졌다. 그래서 하나의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여러사람의 작성 시간과 각종 물자 및 자료가 소요되었다. 그러나 이제 AI를 통해서 복잡한 의사결정 절차를 매우 단순하게 줄일 수 있게 되었다. 보고서의 양식과 의례적인 보고서 및 문서들을 AI가 모두 작성을 해줄 수 있다. 사람은 그저 개념과 방향성만을 잡아주면 된다. 이제 Copilot이라는 프로그램만 봐도 이러한 기능들을 모두 같추고 있다. 예컨데 어떤 계획서 만들 때, 기본적인 제목과 내용에 대한 Outline만 정해주면 PPT를 작성해주고 또 Word 보고서도 써준다. 그리고 Word를 PPT로 전환도 가능하고 PPT를 Word로 작성도 해준다. 또한 PPT 디자인이나 보고서의 형식 및 디자인도 추천해준다. 이 기능은 점차 더 좋아질 것이다. 그 외에도 일정과 메모, 회의록, Onedrive 와 Office 앱들이 모두 통합되어 Copilot을 통해서 Orchestration이 되고 있고 더 효율적으로 변할 것이다.
 
이제 업무는 AI 비서에게 시키고 초안을 작성시키고 우리가 손으로 하기위해서는 여러 프로그램을 통합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업무도 AI가 모두 조율하고 연관시켜 몇가지 추천으로 업무를 수행해 줄 것이다. 그럼 우리는 조금 Trimming만 하면된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기초적인 AI 플랫폼을 MS나 Amazon 같이 글로벌 규모의 기업들과 싸워서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AI 플랫폼 위에서 작동하는 Application에서 부가가치를 창출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내부용 AI 플랫폼, 특정 데이터셋에 적합화된 AI, 여러 Application을 통합한 AI 등과 같은 종류의 AI 제작에서는 우리나라가 훨씬 앞설 수 있고 이러한 것들은 충분히 괜찮은 서비스적(Application적) 부가가치를 창출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대한민국은 저출산과 고령화의 환경을 레버리지로 사용하여(지렛대 삼아) 더욱 AI를 경영환경에 접목시켜 매우 효율적인 기업 경영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으며 사회 전반에 엄청난 효율성을 가져오는 문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이 AI문화를 세계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토양에 있다고 생각한다. 전국민의 IT화는 매우 높고 국민성은 새로운 것을 엄청난 속도로 받아들인다. 언제나 빠른 것을 좋아하고 조금이라도 편한 것을 찾는다. 과거의 방식에 대한 집착도 없다.

로봇과 AI가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한국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삶의 방식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며 새로운 문화는 자연스럽게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가장 먼저 정부기관의 모든 업무들은 점점 더 빠르게 전산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인허가 절차와 복잡한 문서 양식 및 절차들은 전부 전산화되고 사실상 동사무소에 갈 일이 점점 더 줄어들어 은행처럼 창구의 직원이 필요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금융은 점점 더 전산화되서 각종 금융상품은 한 플랫폼에서 빠르게 비교가능하고 자신의 정보를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가장 최적화된 상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는 더이상 지금과 같은 영업사원은 필요 없을 것이다. 대신 더 고급의 수준에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그런 보험설계사나 자산관리사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세상에서는 자신을 식별할 수 있는 identification 기술과 그에 따른 보안기술이 매우 중요해 질 것이다. 물론 오로지 기술만 필요한 것이라고는 생각 안한다. 오히려 주기적으로 자신의 identification 정보를 갱신하기 위해서 identification 전문 회사 및 정부 기관에 가야하는 것이 일상화 될 수 있다. 큰돈을 보내거나 등기와 같은 중요한 행위를 할 때는 반드시 대면을 통한 identification이 강제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얼마나 확실하게 identification이 가능한 지의 여부일 것이다.

점점 더 Seamless한 서비스가 일어날 것이다. 또한 재화와 서비스는 모두 서비스로 통합될 것이다. 어떤 것이든지 딱딱하게 구분지어지기 보다 가치를 중심으로 서비스로 제공될 것이다. 재화는 점점 더 그 주도권과 중요성을 상실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비스와 그 서비스가 가져다주는 가치 그 자체가 중요해질 것이다. 서비스의 궁극적 목표인 가치는 결국 정신적인 만족 및 문제 해결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편안한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 수많은 서비스들이 등장 할 것이다. 편안한 마음을 위해서 좋은 음식, 옷, 집, 차, 휴대폰, 컴퓨터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고통스러운 삶이 아니라 편안하고 즐거운 삶으로 가고 싶다. 그리고 나머지는 그것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진정으로 편안한 마음으로 살기 위해서 우리는 물질적인 제약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현대문명이 일어난 것이다. 이제 인간 육신의 수준에서 물질적 제약을 거의 벗어나는 세상이 거의 다 왔다. 이제 가장 인간을 노예화 하는 노동으로 인한 시간의 제약이 점점 사라질 것이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 땀을 흘려 일을 하여 소를 기르고 밭을 매는 일은 점점 없어질 것이다. 이제 로봇과 컴퓨터가 이러한 일들을 모두 해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오로지 자기 자신의 내면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이제 정신적인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분열되고 혼란스러운 내면의 정신세계에 강력한 빛과 질서를 부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더이상 먹고살기 위해서 일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AI가 할 수 있는 것에는 충분히 제약이 존재하고 인간은 여전히 창조적이고 중요한 의사결정자로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Deep learning의 기술적 수학적 한계도 존재하여 엔비니아나 M7 주식들의 과도한 벨류에이션에 대해서 캐즘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방향성이고 진정으로 강력한 강인공지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지금의 기술에서도 충분히 의지만 있다면 엄청난 업무들을 줄일 수 있다. 프로세스를 간소화하고 표준화하고 그것을 다시 전산화하면 된다. 그리고 이러한 여러 프로세스들을 AI에게 학습시켜 복합적 업무도 간단하게 자연어로 처리시키면 된다.

우리는 이제 진정으로 정신문명을 이룩할 수 있는 토대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을 인류가 진지하게 물으며 살 수 있는 세상이 온 것이다. 나의 마음의 고통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우리는 왜 이토록 불안하고 초조한가?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가? 이러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깊이 숙고하며 내면의 고요한 평화를 발견할 수 있다. 깊은 명상을 하고 선정에 들며 내면의 불안한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며 강력하고 고요한 평화를 자기 자신에게 깃들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계평화는 저절로 될 것이다. 세계는 내면의 투영이다. 우리 인류 의 대다수가 불안하고 혼란할 때, 세상은 혼란하게 보일 수 밖에 없다. 지구에 살고있는 수많은 중생들이 내면의 평화를 조금씩 더 얻기만 해도 세계는 더욱 평화롭고 질서있으며 즐거운 세상이 될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고통스러울 때, 세상은 고통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평화롭고 질서가 있을 때, 세상은 가지런하고 평화롭다.

가만히 우리의 내면을 살펴보면 세상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다. 끊임없는 경쟁으로 피폐해지고 집착으로 얼룩진 마음을 보면 세상의 전쟁과 다툼이 너무도 당연하게 보인다. 우리의 탐욕과 이기심은 우리 모두를 고통의 바다로 몰아넣었다. 모두 함께 같이 잘사는 법을 찾기보다 자신이 남들을 짓밟아야 된다는 잘못된 생각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상대가 잘 되야 나도 더 잘된다. 모두가 함께 잘될 때 진정한 행복과 평화가 있는 것이다. 반면 우리의 교육은 아이들에게 오직 자신만이 앞서야하고 잘나야하며 남들은 자신보다 못해야 좋은 삶을 살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가르침은 실제 맞지 않을 뿐더러 모두를 더 고통스러운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다.

경제학에서도 다른 모든 국가가 함께 잘되야 개별국가의 경제성장율도 높아진다. 고도로 세계화된 세계에서 더이상 뒤로 되돌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물론 지금까지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그 폐해가 많았다. 진정한 세계화는 자본적 논리로 이루어지면 안된다. 자본의 가치체계로 세계화를 조직하면 결국 자본의 탐욕에 의해서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수 밖에 없고 자본을 위해서 사람이 희생되어야 한다. 하지만 반대로 사람을 중심으로 놓고 생각하면 한 사람이 정신적으로 계몽되고 깨어나 존엄함을 간직한 세계시민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자본의 논리가 지금까지 중요했던 것은 생산능력은 매우 늘어났지만 정신적으로 인류를 성숙시키지 못하여 사람들이 물질에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면서 정의로운 분배질서가 왜곡되었고 이로인해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더 경쟁적으로 노동을 해야했고 늘어난 노동시간은 여유를 빼앗고 빼앗긴 여유시간 속에서 정신적 성숙은 요원해졌다. 그러나 이제 선진국에서는 더이상 물질로 행복을 느끼는 경향이 많이 줄어들고 있다. 물건들의 품질은 점점 더 비슷해지고 더이상 큰 차이를 내지 못한다. 그래서 명품과 브랜드가 중요해지게 되었다. 이제 물질적 필요에 의해서 물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 소비를 한다. 또한 이러한 정신적 허기를 물질로 채우기에 조금만 지나면 또다시 물질을 사야하게 되었고 이로인해 여전히 노동시간이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

다행히 로봇과 AI가 노동시간을 현저하게 줄일 좋은 기회를 주고 있다. 로봇과 AI를 통해서 노동시간이 점점 줄어들면 물건은 점점 더 싸질 것이다. 문제는 AI와 로봇보다 더 가치있는 일을 해야 물건이 싸지는 것을 경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교육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창조성을 기르는 교육이 필요하다. 확실한 것은 로봇과 AI가 제공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를 생산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풍요 속에서 부유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기존에 인건비가 커서 직접했던 여러 가사노동과 생산을 위한 반복적이고 불필요한 노동들이 로봇과 AI로 대체되면 실제적으로 중요한 핵심가치에만 시간을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 핵심가치를 생산하더라도 그것을 소비하고 그 소비를 통해서 더 큰 가치를 생산할 수 있도록 선순환이 이루어져야 모두가 잘 살 수 있다. 기존의 부자들은 자본을 축적하고 있기 때문에 로봇들과 AI를 이용하는데 부담이 없기에 그들은 기본적으로 매우 여유로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AI와 로봇들에 접근할 만큼의 자본을 축적하지 못한 사람들은 사실상 사회에서 어떤 자리도 없을 것이다. 이들은 빠르게 소멸되어야 할 대상이 될 것이다. 한 두세대를 거치면서 이렇게 가난한 사람들이 자손을 낳지 못하고 사라지면 오직 자본을 축적한 사람들만 살게 되어 모두가 여유로운 세상에서 살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내면이다. 우리의 내면이 안정되지 못하면 아무리 물질적 풍요가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다시금 고통의 바다로 제발로 들어갈 수 밖에 없다. 다시금 경쟁하고 고통을 가하고 전쟁을 하고 파괴한다면 그 폐혜는 오히려 전례없는 고통속으로 모두를 몰아갈 것이다. 따라서 자본축적 여부를 떠나 모두가 다 같이 잘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만이 필연적이고 유일한 가치라는 것을 모두가 깨달을 수 있도록 교육해야한다. 상대의 고통이 나의 고통과 같고 나의 고통이 상대의 고통과 같다. 우리 모두가 다 같이 잘살아야 한다.

어려움을 겪는 이웃은 우리가 도와야 한다. 그러나 그 도움은 그 자신이 그 고통으로부터 나올 수 있도록 지도의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단순히 위기를 모면하게 해서는 차라리 돕지 않는 것이 낫다. 그들은 공동체에 끊임없이 요구하다 그 선이 넘어 지원이 끊긴다면 불만을 제기하고 공통체에 위해를 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이러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자신이 사회에 어떤 가치를 일으켰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남보다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출세해서 남들의 고통을 보며 자신의 승리를 기뻐하는 불쌍한 사람들의 나라가 되었다. 우리가 인류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보다 더 많이 누린다면 그 정당성이 어디서 비롯되는지에 대해서 진정으로 깊이 생각 해 보아야 한다.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저들보다 더 많이 주셨는가? 더 잘 입히시고 더 잘 먹이시는가? 하나님이 진정으로 선하시다면 모두를 사랑하실텐데 왜 차별을 하는 것인가? 누군가는 이 질문에 선민의식으로 답을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반만 맞는 답이다. 선민이라면 하나님이 더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어찌 하나님이 자신의 자식들을 차별하여 사랑하겠는가? 그런 하나님이라면 제대로 된 하나님인지 의심스럽다. 오히려 우리를 다른이들보다 더 잘 입혀주시고 먹이신다면 우리가 그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사역을 담당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기르시듯 우리도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야 한다. 그들의 성품이 부족하여 먹이고 입혀도 스스로 고통의 문을 열고 들어가기에 하나님도 그들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태어났다. 그분의 영광이 이 땅에 펼쳐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넘어 세계와 인류를 품에 안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