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드가 제공할 서비스가 철학이라면, 그 철학은 어떤 철학인가?

나는 여기서 철학이라는 단어 대신 사상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아니 어떤 정신이라는 말이 더 적합한 것 같다.

클라우드 서비스는 새로운 정신을 제공하는 것이 그 최종 목표가 될 수 밖에 없다.

클라우드 사회는 기존의 시대와 분절적인 부분이 많은 변화라고 생각한다.

클라우드 사회라는 말은 물론 기술의 발전의 연장이다. 그러나 그 기술이 양적 성장이 어떤 임계치에 다달으면 우리의 삶은 질적으로 변화된다. 양질 전환이 이루어지는 시대가 일어난다.

 

 질적 변화는 어떤 수준의 근본 법칙이 바뀌는 것이다. 이전의 시대는 소유주의의 시대였다. 배타성을 기반으로 했다. 하지만 클라우드 시대에서는 소유의 개념이 사라지고 배타성이 존재하기 힘든 상황이 된다. 소유가 의미를 잃는다면 부의 재분배 자체가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부는 소유를 기반으로 일어난 부이다.

 

 클라우드라는 거대한 기술 산업 전반이 최종적으로 고객에게 제공해야할 가치는 이러한 이행에서 일어날 마찰을 최소화하여 폭력사태를 막고 평화적인 사회발전이 일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요청되는 것은 교육 서비스이다. 그리고 이 교육이 가져다줄 가치의 근원은 새로운 사상이다. 새로운 사상을 기반으로 새로운 사회, 시대를 열 수 있다.

 

 새로운 사상은 우리가 무엇을 추구해야하는가를 알려준다. 앞으로 소유의 배타성이 사라지는 시대에서 우리는 질서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새로운 목표가 필요하다. 더 이상 많이 가지고 많이 많들어내는 것이 지상과제가 아니다. 그것을 뛰어넘는 새로운 목표가 필요하다. 그것이 무엇일까?

 

 나는 이 새로운 목표가 결국은 평화라고 생각한다. 인류사회의 정신적 유산은 모두 배타성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보편적 평화를 추구하는 종교, 사상이 있었지만 실제로 전 인류를 대상으로 실행된 적은 없었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은 불과 50년 전에 비해서 엄청난 교류의 양적 질적 성장이 있었지만(인터넷으로 인해 일어난 온갖 교류를 생각해보자) 여전히 혼란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인종갈등, 민족갈등, 경제계층갈등, 남녀갈등 등 수많은 갈등이 존재한다. 우리는 인류의 정신적 유산이 내포한 모순들, 즉 가족주의, 부족주의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부족주의의 틀은 인류공통체를 품기에는 너무도 좁고 그래서 엄청난 경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공정에 대한 가치에 메몰되어 있다. 그 이유는 기존의 부족주의적 사회, 가족주의적 사회의 틀안에서 발전이 끝났고 자리가 한정적이므로 내 가족, 내 부족을 자리에 껴넣는라 온갖 기행이 벌어지기까지 한다. 조국 문제, 정유라 문제 등은 이러한 세태를 말해주고 있다. 공정을 추구하는 것은 결국 누구를 낙오시킬까라는 문제로 귀결된다. 대한민국은 교육수준이 높고 자존심이 강한 나라이다. 그 누구도 이 사회에서 낙오되기 싫어한다. 결국 엄청난 경쟁사회가 되었다.

 

 자리가 계속 생길 때는 국가적인 틀로 사람들을 설득하고 나아가 인류적인 틀로 설득을 하기가 쉽다. 하지만 이렇게 사회발전이 구조적으로 멈추었을 때는 사람들은 나약해지고 개인주의, 가족주의가 강해진다. 사회는 무너지고 소외된 수많은 사람들은 사회전복을 꿈꾼다. 임계치가 넘으면 유혈혁명이 일어난다.

 

 클라우드 사회에서 부족주의적인 틀로 접근한다면 이것은 필연적으로 모순을 야기한다. 어떤 부족을 낙오시킬 명분을 가질 수 있는가? 어차피 모두가 지식을 얻고, 노력도 할 수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더욱 명분이 없다. 결국 폭력사태를 야기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개인주의적인 시각으로 접근해도 마찬가지이다. 지식도, 노력도, 재산도 모두 공유가능한 클라우드 사회에서 누구를 낙오시켜야하는가? 기존의 가치 체계에서는 쉽게 정할 수 없다. 이는 다시 개인들끼리의 폭력사태를 야기한다.

 

 새로운 사회에서 사상은 새로운 가치를 교육하므로서 새로운 공정을 만들어야 한다. 이 사상은 클라우드 기반 교육서비스로 해야한다. 새로운 가치를 교육하면 새로운 권력이 생산된다. 그리고 이것은 선거, 자본으로 사회에 표현될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가치는 무엇일까?

 

 앞에서 말했듯 이것은 평화이다. 누가 얼마나 많은 평화를 생산하는데 기여했는가이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의 사회구조로서는 분명 납득이 힘든 것이다. 물질적 가치가 최우선되는 사회구조에서 이것을 측정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떤 합의가능한 체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분명 지금의 체계를 유지하면서 사람들에게 인류의 평화적 사회를 건설하는데에 기여하는 것이 참된 목표라는 것을 이해시킨다면 투표라는 방식, 기부 및 투자라는 기존의 체제로 권력을 분배하고, 자본을 분배하여 새로운 가치를 측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핵심은 결국 교육을 통해서 평화의 가치를 이해시키고 그것의 기여를 측정하는 능력을 개인이 갖출 수 있도록 해야한다.

 

 누가 평화를 위해서 기여했는가? 이것은 정말 어려운 측정인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평화의 시작은 일상이라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우리의 일상을 누가 평화롭게 해주었는가? 이것은 좀 더 쉬운 문제가 된다. 기존의 상담사, 의사 등 기존의 직업에서 제공하고 있는 가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방식은 사람들이 물질적 소유를 극대화하는 것을 지속시켜주는 방식 또는 물질적 추구를 촉진하는 것에 기여하는 것이었다. 더욱 경쟁을 잘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었다. 일상을 더욱 더 전쟁화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상담사나 의사의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예외는 있다 그러나 산업군 전체적으로는 그것이 목표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앞으로는 사람들이 전쟁을 멈추고 화해하고 평화를 얻는 삶을 누리는 교육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이러한 교육은 첨단기술과 최고의 예술성을 겸비한 채로 제공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인성을 갖출 수 있게 해주는 교육 서비스가 최고의 서비스가 될 것이다.

 

 이러한 인성교육 서비스는 평화적 사상을 기반으로 해야한다. 따라서 클라우드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평화 사상이다. 어떤 것이 평화인가? 이것을 정의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