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건설사업관리를 시작으로 커리어를 시작하고 있다.
내가 이 일을 선택한 것은, 이것이 앞으로 우리 건설업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건설사업관리라고 하는 것은 건설의 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제거하고 정해진 품질 수준을 만족하는 목적물을 주어진 비용과 시간 내에 완성하는 것이다.

내 꿈은 세계적 부동산 개발업자가 되는 것이다. 사업을 기획하고 사람들을 모으고 연결하며 문제를 조율하여 해결하고 부동산 개발사업을 성공하여 엄청난 부를 창출시키는 일을 하고 싶다. 또한 이 전 과정을 완전히 정보화하고 싶다. 여러 프로젝트를 하나의 헤드쿼터에서 관리하며 관리자는 서버에 연결만 하면 전 세계에서 하나로 모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또한 부동산 사업을 성공하면 땅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지정학적, 문화적, 사회적, 법적으로 큰 영향을 받고 또 그래서 영향을 줄 수 있다. 올바른 부동산개발은 엄청난 부를 일으킨다.
나는 부동산개발 사업 이익을 모두 세계적 교육재단을 설립하는데 쓸 것이고 항상 부동산 개발 성공 국가에 교육재단 산하의 대학을 만들 것이다.
그래서 아프리카, 남미, 인도 등 수많은 나라들에서 아이들을 홍익정신, 보살도 정신으로 가르쳐 부강한 국가의 인재를 육성할 것이다.

홍익정신과 보살도의 정신이 깃든 라이프 스타일은 한국의 문화로 자연스레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인의 삶이 보살도의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음식, 의복, 집은 그 정신이 위대한 보살의 정신이기에 그 삶의 양식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보살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아무리 좋은 문화를 가지고 있더라고 이것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면 문화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우리는 허무하고 나약해진다.

한국인의 힘은 가르치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인류를 계몽하자.
동방의 횃불 한민족이여!
어두운 21세기의 난제를 해결하고 빛이 되어 인류를 강렬한 깨달음으로 이끌자.

우리는 너무도 오랫동안 우리가 누군지 몰랐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완전히 성장했고 세계에 눈을 떴다.
미국의 공백은 하늘이 대한민국을 부르는 소리다.
이 공백을 폭풍이 아닌 뜨거운 사랑으로 채워 인류를 구원하자.

나는 국제 부동산 개발을 통해 인프라와 주거, 상업시설을 코디네이션 하고 전쟁보다 더 수익성 높은 사업을 일으켜 폭력으로 세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할 것이다.
저성장의 본질은 자본주의의 한계가 아니라 우리의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지혜다. 저 어려운 백성들을 보라.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도 우리를 기다리는지 보이는가?
그들은 겸손하여 진정한 하늘의 민족을 기다린다.

우리는 그 간절한 부름을 듣고 찾아가야 한다.
지혜는 그들을 일으킬 수 있는 힘을 스스로 부른다.
나는 그것이 한국의 국제 부동산 개발이라고 생각한다.
다리를 놓고, 발전소를 세우고, 도로를 만들며 주택단지와 상업시설을 만든다.
그리고 그 건물 안에서 삶을 피워내고 상업시설들을 사용하며 부를 일으킬 수 있도록 한다.

진정한 개발사업은 교육시설이다. 너무 어려운 최신식 시설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100년이 지나도 쓸모가 있는 단순하고 견고한 구조물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구조물에서 올바른 삶이 피어나도록 설계를 하고 우리의 브랜드로 채워 한국의 정신을 가르쳐야 한다.
그래서 주택과 상업시설을 사용하며 자연스럽게 홍익정신을 스며들게 해야 한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비전은 흡사 제국주의와 같아야 한다.
과거의 서구 열강들의 제국주의를 떠올려 보면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더 명확하기 확실할 수 있다.

자본주의가 고도와 되면, 기존의 내수 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르고 과잉공급이 발생한다. 그리고 공황의 위기가 생긴다.
성장률은 둔화되고 양극화는 심해지며 자본가들의 이윤 또한 줄어든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이윤율 저하로 인한 자본주의의 경향은 결국 탈출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제국주의가 탄생한다.

과잉생산되는 상품을 사줄 새로운 시장과 노동력 상승을 막아줄 노동시장을 새롭게 개척하기 위해 거대 자본들은 국외로 나아간다.
인도, 아메리카, 아이티 등 수많은 식민지들이 생겨났다.

군사적 우위를 이용하여 과세와 강매를 하여 생산물을 수탈하고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여 노동력을 착취한다.
이 착취는 다시금 본국의 이윤율을 높이고 전체적인 생활수준을 계속해서 유지시켜 주며 양극화를 둔화시킨다.

하지만 이러한 폭력성을 기반으로한 제국주의는 국제적 양극화를 만든다.
지배국가와 피지배국가 간의 정치적 충돌을 일으키고 국가간 군비경쟁을 가속화 시킨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서 식민지의 국제적 확장이 지체되면 국가간 양극화 및 내부적 양극화가 심각한 정치적 갈등을 낳게된다.

신흥국은 기존의 식민지를 쟁취하려고 하고 식민지는 독립하려고 하며 이를 안정화하기 위해서 군비경쟁은 가속화 된다. 본국 내의 양극화는 정치적 불안정을 야기하고 지도자로 하여금 유태인, 외국인 등에게 그 책임을 돌리는 선택을 하도록 만든다. 이 모든 것들은 양차대전을 만들었다. 1차대전과 2차대전은 국제 자본주의가 만든 제국들의 싸움이었다. 큰 아픔을 겪은 서구는 2차대전 이후 새로운 방식의 제국주의를 만든다.

새로운 미국식 제국주의는 브레튼 우즈체제와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것으로 대표된다. 이는 미국이 강력한 군사력으로 국제질서를 유지하고 거대한 시장을 개방하는 대신 기축통화의 지위를 가졌다. 그리고 IMF와 세계은행 등을 통해서 신흥국을 새로운 방식으로 식민화 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미국이 기축통화인 달러를 바탕으로 이자율을 제어하여 화폐가치를 낮추는 속도를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 사실상 달러 인플레이션을 통해 국제적 세금을 거둘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달러화가 부족해지는 신흥국들의 위기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둘러 자국의 이익을 충분히 관철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이자율을 낮추고 화폐를 발행하여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고 첨단 혁신 연구 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를 하면서 지적이고 수준높은 산업을 리드한다. 그리고 그러한 산업이 충분히 육성된 경우, 이자율을 높이고 화폐발행을 둔화시키면서 자국으로 달러를 유입시키고 신흥국은 달러위기를 겪는다. 이때 IMF를 통해서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는 쪽으로 신흥국을 착취할 수 있다.

새로운 미국식 식민주의는 반노예적, 반지배적이며 자유무역이라는 환경과 기축통화라는 미국의 특권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이 가능해진 이유는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이며 수많은 국가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만든 나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체제에서 가장 이득을 본 집단은 미국내 유럽인들이다.

사실상 미국의 신제국주의는 지금까지 전세계를 큰 문제없이 번영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점점 이 시스템의 핵심인 미국이 내부적으로 약해지고 있다.

미국은 내부적으로 불법이민자와 백인들의 소외 문제로 인하여 정치적 갈등을 겪고 있다. 또한 제조업이 침체되고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몇번의 전쟁으로 인해 국외 간섭에 대한 두려움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여러 이유들은 미국이 더 이상 국제문제에 대한 개입을 줄이고자 하는 방향으로 이동시킨다.

국제적 분쟁은 여전히 발생하고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공백은 폭력적 사태를 일으킨다. 우크라이나 사태나 이팔전쟁과 같은 상황은 이러한 사태를 더 잘 보여준다.

작금의 세계를 보면 마치 벨에포크 시대 이후 양차대전을 겪기 전 유럽과 같다. 국제자본은 거침없이 국가들을 이동하고 전세계적으로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는 평화의 시대의 끝이 보이는 것 같다.

브렉시트와 트럼프는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통해 미국이 주도하던 세계가 저물고 춘추전국시대가 시작될 것이라는 서막을 올렸다. 더하여 중국의 성장은 미국의 약화를 더욱 두드러지게 하고 있다.

미국이 약해질 경우 지역세력들이 힘을 얻게되고 지역세력이 많아지면 분쟁이 잦아지게 된다. 그리고 잦은 분쟁은 예상치 못한 폭력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NPT 체제를 위협하는 분쟁 상황이 발생했을 때 미국이 잘못된 시그널을 보내면 세계는 매우 위험해 질 수 있다.

대한민국은 이러한 인류가 처한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할까?

궁극적으로 대한민국은 미국 제국주의의 판이 깨지는 상황에서 그 공백을 매꾸고 나아가 더 나은 인류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한민국식 제국주의를 해야한다.

대한민국의 제국주의는 미국의 자유무역과 기축통화 시스템을 기반으로 우리의 문화를 통해 식민지를 교화시키는 방식으로 가야한다.

대한민국은 이미 급속한 고령화, 저출산을 겪고 있으며 중국과 신흥국의 추격으로 기존의 제조업에서 가격경쟁력을 잃고 있다. 내부적으로 높은 수준의 교육열로 젊은 세대는 더이상 한국 산업구조에서 핵심적인 공장들에서 노동자로 일하고자 하지 않는다. 이는 제조업의 임금상승으로 인해 한국의 수출경쟁력을 크게 악화시킨다. 이러한 압력은 한국을 이미 저성장국가로 만들었다.

2000년부터 한국의 경제성장율은 계속해서 장기적으로 떨어졌다. 이제 1퍼센트를 간신히 넘는 수준이 되어가고 있다. 다행인 것은 우리나라의 부의 양극화는 아직까지는 그렇게 심하지 않은 것 같다. 다만, 앞으로 저성장이 지속되면서 양극화가 빠르게 가속화 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만약 양극화가 빠르게 가속화된다면 한국은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 처할 수 있다. 폭력적인 정치 비전을 제시하는 포퓰리스트가 집권할 수 있다.

한국 사회를 짓누르는 이런 압력들은 결국 우리를 국제 사회로 나아가도록 만든다.

우리는 국제 사회로 나가서 시장을 개척하고 부족한 노동력을 확보해야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먼저 핵심적인 것은 우리의 자산을 지켜줄 강제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미국의 도움이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 한인 집단이 미국 내에서 강력한 정치 리더쉽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야하며 워싱턴에 한국인들이 많이 진출 할 수 있도록 도와야한다. 그리고 다양한 루트로 워싱턴에 한국의 해외 투자를 보호할 군사력을 지원 받을 수 있도록 로비를 해야한다.

한편, 워싱턴에서 우리 해외 자산을 보호해줄 힘을 얻으면서 한국의 다양한 산업들을 해외에 진출시켜 공장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학교를 짓고 부동산 개발을 통해서 문화를 수출해서 수익을 창출해야한다. 한국 공장에서 일하고 번 돈을 한국 문화를 교육받고 소비하는데 쓰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이 만든 쇼핑몰과 영화관, 놀이동산에서 즐기는 우리의 해외 식민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우리의 군사력으로 진출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워싱턴을 움직여 군사적 레버리지를 취할 것이다. 마치 유대자본이 그렇듯 말이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우리는 결코 착취하는 제국주의를 하지 않을 것이다. 서구열강도 문명화의 사명을 가지고 제국주의를 했다. 우리 또한 어떤 문명화 사명을 가지고 제국주의를 할 것인가?

우리는 부족하고 저개발된 국가를 문명화 하고자 식민지를 만들 것이다. 이로인해 얻는 경제적 이득은 부수적인 것이다. 우리의 목적은 문명화되지 않은 사회의 사람들이 부강하고 평화롭게 살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식 제국주의는 한없이 높은 문화의 힘을 바탕으로 한 교육이 그 핵심이다. 우리는 군사력으로 경제적 이득을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더 나은 시민으로 교육시키는 것이다. 그 교육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생산하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다. 또한 일 자체가 교육이 되어야 한다. 기업 자체가 교육체계가 되어야 한다. 기업에서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법을 배우며 인성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야한다. 그리고 자신의 특별함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일하고 자본을 축적하고 삶의 질을 높이고 더 나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배우고 사회를 위해서 연구하는 습관을 가지는 올바른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미국 워싱턴에 대한 한국의 강력한 영향력을 기반으로 저개발 국가들에 산업기반을 만들고 문화를 수출하는 한국식 제국주의가 한국을 다시 번영하게 하고 인류를 구원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제 이것을 어떻게 실제로 구현하는가? 라는 질문이다.




 인류평화는 일상의 평화로부터 시작된다.

내 일상이 여전히 전쟁중인이상 평화는 없다.

인류가 어떤 수준의 평화를 가진다는 것은 사람들의 일상도 그 수준의 평화를 평균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류는 분명 과거보다 더 평화로워졌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여기고 살던 개인주의 원시사회에서 무리를 이끄는 부족사회에서 국가로 나아가 세계시민사회로 가고있기 때문이다.

 

 근래의 세계는 서구사회가 그 주도권을 쥐고 발전을 시켰고 따라서 좋은 삶의 규정은 그들의 사상이 발현된 결과가 되었다. 하지만 2021년 현재 전세계는 다시금 혼란으로 빠져들고 있다. 미중 갈등, 인종차별, 총기난사 모두 미국에서 심각한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은 EU를 탈퇴한 영국이 보여주듯, 이민자 문제로 인한 극우화로 문제가 보여주듯, 국제적 질서에서 과거의 국가민족주의로 회귀하고 있다. 서구의 사상이 빛을 잃고 있다. 더이상 서구의 삶이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서구사회의 삶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꽃을 피웠고, 물질추구와 합리주의가 삶의 방식이었다. 합리적 물질추구가 서구의 바른 삶이었다. 우리는 합리적으로 물질을 추구하는 것이 선인 사회를 살고 있다.

 

 서구적 합리성은 무엇일까? 그것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평등과 자유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현대사회에서 발전된 계약의 형태로 나타난다. 먼저 가장 거대한 계약은 사회계약이다. 국가와 시민 사이의 계약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루어진 계약이다. 이것은 헌법이라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따라서 헌법은 현대에서 일종의 신성을 내포하고 있다. 헌법이 제정되고 인권이 정의되면 그 아래 그 주석들이 달리는데 그것들이 형법, 민법 등이다. 신성한 인권을 다양한 경우에서 보호하고 수호할 수 있도록 그 정당성을 세부적으로 정의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한, 우리는 물질적 추구를 하면 된다. 합리성의 결론은 법체계로 드러난다. 법을 준수하는 것은 합리적이라는 증명이다.

 

 그렇다면 서구적 평등과 자유는 진정으로 평등하고 자유로운가? 지금 현재 그것의 모순이 극단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서구 철학의 평등 개념이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이후, 서구의 법체계가 과연 정의로운가?라는 문제가 강하게 드러났다. 그리고 그것이 지키는 평등이 과연 모두에게 평등한가라는 의문이 세계적으로 일어났다.

  

 나는 사회의 법체계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진정으로 정당하냐가 중요하다기보다 사람들이 이것을 수긍하느냐이다. 정의로운 사회라는 것이 상당히 많은 사람에게 납득되고 이해되면 사회는 어찌됬든 안정된다. 사형을 당하는 사람이 많아도 당하는 사람이나 사회구성원이 대부분 이해가 된다면 이것은 정의로운 것이 된다. 그러나 현재 서구의 법체계는 많은 의문을 야기하고 있다.

 

 이 의문을 해결하는 방식은 결국 복지다. 복지를 통한 고수준의 평등. 그러나 서구의 복지는 물질적인 수준을 크게 넘지 못한다. 비용을 지원하는 것이다. 나머지는 알아서해라. 이것이 게임의 룰이다.

 

 그리고 이러한 물질적 복지는 자유라는 가치와 충돌한다. 내가 왜 나의 잠재적 적인 타인에게 어떠한 이유로 나의 물질적 이득을 나눠주어야하는가? 나는 그러고 싶지 않을 자유가 있다. 왜 국가가 나의 이러한 자유를 침해하는가?

 

 이 갈등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어떤 합리적인 이유로 이것을 뛰어넘기는 아주 힘들다. 그리고 현실은 빈익빈 부익부가 되고 결국 이것이 앞으로 지속된다면 극단적 불평등 사회가 될 것이다. 아무리 교육비를 주고 주거비를 지원하고 식비를 지원해도 이들은 대부분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사회는 가난해지기는 쉽고 사회의 빠른 변화로 인해 현상을 유지하는 것은 힘들어지고 있다.

 

 서로가 적대적으로 변할 수 밖에 없다. 부자들은 불만이 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비난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들을 비난한다. 미국 사회에서도 총기난사가 많이 일어나고 유럽에서도 파리 이슬람 테러가 일어난다. 테러와의 전쟁을 해왔지만 자국민이 테러리스트가 되고있다. 더 많은 경찰력과 총기 규제는 자유라는 가치와 충돌한다.

 

 국제사회는 새로운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인권을 필요로 한다. 서구적 합리성을 넘은 새로운 합리성. 우리는 이것을 찾고 세계를 교육시켜야한다. 그러므로서 세계인의 일상을 더욱 평화롭게 하고 나아가 세계평화를 이룩해야한다.

 이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평화의 가치를 일깨우는 것이다. 도대체 왜 평화가 필요하다는 것인가?

물질이 필요하지 평화가 왜 필요한 것인가?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은 이미 물질추구를 밥벌이 수단으로 생각할 뿐이다. 이것은 물질추구 자체가 삶의 목적이 되는 시대는 지나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물질 추구를 멈출수는 없다. 아직 사회는 물질을 무료로 공급해주지 않는다.

 

 평화로운 사회가 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나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서로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존엄이라는 것은 모두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즉 사회에 모두 필요한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이것을 교육하는 것이 평화교육이고 인성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말초적인 감각을 추구하고 사회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원한다. 하지만 결코 사회는 그렇게 놔두지를 않는다. 왜냐하면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리를 착취해야한다. 클라우드 사회의 이행기에 있는 이 사회의 사람들은 여전히 착취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미 정신은 그 다음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여기서 생기는 모순이 너무도 사람들에게 큰 정신적 고통을 안겨준다. 왜 빨리 넘어가지 않는가?

 

 왜냐하면 우리 스스로가 변화하기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가 여전히 조직에 충성하고, 내 자식과 내 가족만 생각하고 낙오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을 그대로 하고 있으면서 누군가가 저 너머로 우리를 이끌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세상은 결코 그렇게 되지않는다.

 

 내가 변해야 세상이 변하는 것이다. 공짜 점심은 없다. 이 시대가 결코 쉬운 시대는 아니다. 그러나 어느 시대도 쉬운 시대는 없었다. 우리 자신이 생각을 바꾸고 변화하면 주위가 변하고 주위가 다시 세상을 변화시킨다.

 

 말초적 감각을 추구하면서 착취받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사회가 우리를 착취하는 방식이 곧 말초적 감각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구조는 이 방식에 완전한 최적화가 되어있다. 멋진 차, 외모, 옷 등 말초적 감각을 당근으로 두고 가난한 자들의 삶을 채찍으로 두고 그 둘 사이의 사람들이 멈추지 않는 노예로 스스로 작동하도록 만든 사회이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서 넘어진 자는 이 시대의 교육자료인 가난한 삶의 표본이 된다. 신용불량자, 기초수급자 등이 있다. 또 엄청난 속도로 뛰어 당근 밭으로 넘어간 사람들은 위대한 사람의 표본으로 교육자료로 저장되어 극단적인 물질적 풍요를 누린다. 말초적 감각을 추구하면서 사회를 변화하는 것은 잘되는 방향이든 망하는 방향이든 불가능하다.

 

 사회변혁을 평화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대안을 보여주고 납득을 시켜야한다. 교육을 통해서 새로운 방식의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납득시켜야한다.

 

 평화적인 변화는 구조를 파괴시키지 않고 그 구조 위에서 구조를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민주주의 체제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이 구조가 가지고 있는 자본권력과 선출권력 구조를 평화적인 방식으로 기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물질적 가치의 무분별한 추구보다 평화로운 삶이 더 좋은 것을 깨닫는다면 모두가 이것을 추구할 것이다. 문제는 평화적 삶을 어떻게 가져다 줄 수 있는가이다. 이것이 앞으로 연구해야할 과제이다.

 

 어쩌면 인류는 지금까지 이 평화적 삶을 위해서 발전한 것인지도 모른다. 물질적 추구도 평화적 삶을 위해서 필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 너머로 또 나아가야한다. 종교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넘어갔듯 우리는 자본주의에서 평화주의로 넘어가야한다. 물질의 추구가 이전의 초월을 야기했다면 이제는 평화의 추구가 초월을 일으켜야 한다.

 - 클라우드는 국민들에게 무엇을 주어야하는가?

 국민들에게 줄 수 있는 클라우드화의 가치는 1차적으로는 어디서든지 높은 컴퓨팅 파워를 기기의 성능에 상관없이 쓸 수 있는 것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엄청난 컴퓨팅 파워를 무엇에 쓸까? 결국은 어떤 경험을 주는 것이다. 어떤 경험을 제공해야하는가? 게임, 영화, 음악 등 이미 있는 컨텐츠들이 많다. 그럼 이 컨텐츠들에서 컴퓨팅을 높이면 VR, AR화가 되는 것이다. 교육 부문에서는 코딩교육을 위한 환경을 빠르고 쉽게 제공하고 쉽고 빠르게 웹사이트를 만들고 호스팅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블로그와 같은 형태는 상당히 폐쇄적이라고 생각한다. 클라우드화가 진행되면 container를 띄우고 그 컨테이너라는 개념 아래에서는 훨씬 더 다양한 종류의 블로그 형태와 디자인 수정이 가능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클라우드화를 위해서는 클라우드형 사회에 맞는 새로운 교육이 필수다. 교육이 엄청나게 많은 수요를 창출한다. 전 국민이 코딩을 할 수 있고, 전 국민이 AI를 이해하고 데이터를 축적하는데 노력하고, VR과 AR을 이용한 컨텐츠를 즐기고 만들 수 있다면 이로 인해서 창출 될 수 있는 경제 유발 효과는 매우 클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자리들은 젊은 사람들이 원하는 수준의 일자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소프트웨어 기반 생산은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훨씬 덜 받기 때문이다. 유비쿼터스한 일자리들이 많이 생길 수 있다. 사람들에게 즐거움, 아름다움을 소프트웨어 기반으로 경험할 수 있게하면서 일으키는 가치는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고 사무실과 같은 수직적 위계 조직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앞으로 클라우드화가 되면 많은 조직은 위계가 사라지고 모여서 일을 진행하는 것이 줄어들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산업은 물질적 생산이었다. 그리고 이런 생산 산업은 자동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사람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경제활동을 해야하는가?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질적인 부분이 아니라 정신적 가치를 창출해야한다. 정신적 가치를 창출하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이러한 사회는 얼마나 빨리 올까? 엄청난 저항이 있을 것이다.

 

 예컨데 모바일 택시플랫폼이 올 때 택시기사들은 저항했다. 앞으로 자율주행이 늘어나면 버스기사들도 저항할 것이다. 배달도 로봇이 할 수 있게 되고, 각종 사무업무는 AI가 진행한다. 로봇도 로봇이 만들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흐름이 될 것이다. 에너지를 얻고 그 에너지로 로봇을 만들고 다시 그 로봇이 에너지를 얻고 다음 세대의 로봇을 만든다. 여기서 거의 모든 산업을 들어간다. 사람은 무엇을 해야하는 것일까? 즐기는 것이다. 여기서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그러나 결국 이 기본소득은 이행기의 눈속임일 뿐이다. 결국 소유권을 기반으로하는 개인적 자본은 점점 그 개념이 상실된다. 경험에 대한 접근성으로 소유적 자본의 개념이 바뀐다. 그렇다면 자본을 기반으로 하는 권력은 무력화된다. 그리고 접근성을 제한하는 권력이 자본 권력을 넘어설 것이다. 누가 경험에 대한 접근성을 통제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그것을 자본과 정부가 했지만 앞으로는 정부가 그것을 떠맡을까?

 

 만약 사람들이 원하는 경험이 유사하다면 그러한 경험에 대해서는 정부가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든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생산활동이 사람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그 경험(기본욕구충족경험)을 정부가 통제할 명분이 없다. 로봇이 고생하는 것을 막을 필요는 없다. 누구나 밥을 먹고, 집을 꾸미고 살고, 옷을 입을 수 있다. 이것을 막을 필요가 없고 그럴 명분도 없다. 지금까지는 정부와 자본이 그 역할을 했다. 이것을 통제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일을 하지 않고 사회는 전체적으로 낮은 생활 수준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로봇이 그 대부분의 고된 노동을 한다면 사람들을 두려움으로 통제하여 일을 하도록 강제할 이유가 없다. 더 좋은 차, 더 좋은 집, 더 좋은 옷. 정보만 있다면 누구나 입을 수 있고, 소유할 수 있다. 프린팅하면 되기 때문이다. 

 

 힘들게 생산한 것은 힘들게 얻어야 한다는 경제의 기본원칙이 있다. 힘들게 생산하지 않은 것을 힘들게 얻게 하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점점 어렵다. 정보의 확산을 막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당화할 어설픈 근거도 쉽게 통하지 않는다. 한국은 교육수준이 매우 높은 나라이다.

 

 노동을 거의 안해도 되는 사회가 오면 사람은 무엇을 목표로 살까? 목표가 없다면 인간은 헤메고 우울해지고 자살까지 한다. 우리나라의 자살율은 매우 높다. 앞으로 더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젊은 2030의 자살율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2030은 새로운 세대이다. 이들은 클라우드적 마인드를 가진 세대이다. 이들은 자동화된 미래세계에서 무엇을 추구해야할지 모른다. 조직이 무너지고 지식의 전문적 배타성이 상실되는 시대에서 무엇을 소유해야하는가? 소유할 것이 없다. 우리는 접근해야한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클라우드 산업 위에서 필요한 서비스는 말초적 즐거움을 넘어서야 한다. 플라톤의 비유를 쓰면 요리사로 보이는 의사가 되야한다. 요리사는 이미 많다. 의사적 요리사가 필요하다. 의사는 선생님이다. 교육이다. 헤메는 젊은 세대에게 희망적인 가치를 제시할 존재가 필요하다. 앞으로의 시대에 우리가 추구해야할 가치는 무엇인가?

 

 분명 소유는 아니다. 소유는 끝나가고 있고 우리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가치는 좋은 삶이다. 무엇이 진정으로 좋은 삶인가? 이것을 배우는 것이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클라우드 서비스는 그 엄청난 기술적 능력을 바탕으로 감각 자극의 예술을 얹어 최종적으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해야한다. 좋은 삶을 가르치는 교육 서비스가 최종가치가 될 것이다.

 

 이것이 돈이 될까?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까?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배타성을 기반으로 해야한다. 교육 내용을 배타적으로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교육내용이 있어야만 나머지가 엄청난 가치를 발휘한다. 교육 내용을 철학이다. 헤겔의 철학이 직접적으로 독일 경제를 일으키지 않았고, 애덤스미스의 철학이 경제적 가치를 유발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철학을 바탕으로 일어난 수많은 변화들은 엄청난 경제적 가치를 일구어냈다.

 

 클라우드 사회는 새로운 철학을 바탕없이 일어날 수 없다.

 나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클라우드에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미중 무역분쟁을 반도체를 가지고 한다는 뉴스를 들었다. 한국이 메모리외의 비메모리에서 반도체 영역을 넓히려는 시도에 제동이 분명히 걸릴 것이다. 삼성은 TSMC와 비메모리 영역에서 승부수를 걸고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비메로리 파운더리는 하청업체이다. 발주를 반도체 설계를 하는 팹리스 회사에서 해주지 않으면 이익을 얻기 힘들다. 그렇다면 결국 발주처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 비메모리 반도체 설계는 팹리스 회사로 미국이 약 60%가량을 차지하고 있고 바이든은 반도체 산업을 인프라 사업이라고 보고 있다.

 

 오늘 미중 무역분쟁을 반도체를 가지고 한다는 뉴스를 들었다. 한국이 메모리외의 비메모리에서 반도체 영역을 넓히려는 시도에 제동이 분명히 걸릴 것이다. 삼성은 TSMC와 비메모리 영역에서 승부수를 걸고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비메로리 파운더리는 하청업체이다. 발주를 반도체 설계를 하는 팹리스 회사에서 해주지 않으면 이익을 얻기 힘들다. 그렇다면 결국 발주처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 비메모리 반도체 설계는 팹리스 회사로 미국이 약 60%가량을 차지하고 있고 바이든은 반도체 산업을 인프라 사업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에서 대만은 우방국가이며 대중 방어선에서 주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대만의 시총에서 TSMC는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그러므로 대만은 국가적으로 파운더리 산업을 보호하려고 할 것이고 현재도 강력한 자금력과 최고의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한국의 삼성은 스마트폰, 컴퓨터 등 완제품까지 생산하는 기업이므로 애플과 같은 기업 등은 삼성에 힘을 실어주는 것에 부담을 느낄 것이다. TSMC는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 것이 확실하고 기존의 글로벌 사슬에서의 역할이 분명하기 때문에 삼성에게 힘을 굳이 힘을 실어줄 이유가 미국은 없게 된다. 왜 TSMC를 놔두고 삼성에 물량을 줘야하는가? 이것은 미국 입장에서 대만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기존의 글로벌 무역망을 재조정하는 것이고 그럴 만한 이유가 미국에게는 뚜렷하게 없다. 현상은 분명 유지되려고 할 것이다. 

 

 한국이 비메모리 영역에서 확장할 수 있는 것은 기존의 생산되는 비메모리를 더 수주하는 것이 아니라 AI, 차량용 반도체 등 새로운 반도체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반도체는 미국에서 자국에서 생산하려고 할 것이고 또는 TSMC가 가져갈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삼성은 삼성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야한다. 

 

 삼성의 장점은 완제품까지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산능력을 바탕으로 스스로 반도체의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TSMC나 인텔은 그렇게 하기 힘들다. 따라서 이 점을 공략하여 삼성은 새로운 종류의 반도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산업에 투자하고 무엇보다 한국 내에서 국가적 투자를 이끌어 내야한다.

 

 나는 이 산업이 바로 클라우드 산업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클라우드 산업에 최적화된 나라라고 생각한다. 5G가 전국에 깔리고 엄청난 속도의 인터넷이 자연스럽다. 이러한 인프라 하에서 클라우드는 5G의 효용성을 극대화하고 이 기반으로 각종 서비스를 창출할 수 있는 사업이다.

 

 클라우드 위에 얹는 서비스는 블록체인과 AI가 있을 수 있다. 블록체인은 전자 장부의 안정성을 위해서 computing power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Block Chain Cloud 서비스를 위해서 엄청난 컴퓨팅 파워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 클라우드는 매우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물론 이 경우 블록체인의 안정성을 위해서 클라우드의 governance 문제는 해결되야할 것이다.)또한 AI는 결국 Data와 Computing power이다. 그리고 이를 극대화 하기 위해서는 중앙집중화된 Computing power와 Storage가 필요하다. 이것은 다시 클라우드로 귀결된다.

 

 나는 앞으로 데스크탑이나 노트북과 같은 edge 컴퓨터의 가치가 휴대성에 오로지 집중되고 성능은 더 이상 문제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게임콘솔이나 게임 기계는 interface의 개념이 될 뿐, 더이상 게임 콘솔을 파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나아가 건물 자체에 보일러실처럼 컴퓨팅 장치가 있고 집 내부에는 컴퓨터가 없고 오직 interface만 있을 것이다. 모니터, 카메라, 마우스, 키보드만 있으면 집 어디에서든지 건물에 내재한 Cloud를 사용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보안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하지만 오히려 시스템 접근 가능성을 한 곳으로 집중하므로 효율적인 보안이 가능할 수도 있다.

 

 Cloud 시스템에 내 계정으로 접속한 후, docker container를 켜듯 내가 실행하고 싶은 환경을 실행하면 이미 필요한 프로그램이 모두 깔려있는 형태가 되는 것이다. docker image를 내 계정의 computing power로 container화 하면 쉽게 작동 시킬 수 있는 것이다. 개발환경을 위해서 걱정할 필요도 없고, 게임의 최적환경을 위해서 걱정할 필요도 없다. 항상 최적의 container로 실행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container의 개인 데이터는 따로 private storage에 저장되기 때문에 container 부분과 data 부분은 항상 분리 시킬 수 있다.

 

 container의 프로그램은 게임의 환경을 최적으로 실행 할 수 있도록 하드웨어를 연결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구성되어야한다. container를 불러오면 자동으로 gpu를 연결하고 가장 효율적인 cpu와 연결하여 연산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통신은 5G로 통신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연결지연 문제이다. 게임이나 live streaming이 아주 중요한 작업은 이 부분이 걱정되지만 5G의 초저지연 기술이 약 0.1초만에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므로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공장, 기업들의 데이터, 게임, AI 학습 등의 Computing Power를 전국가적으로 중앙집중화하고 효율화하여 모든 국민이 Computing에 대해서 장소와 그 용량에 대해서 접근성을 매우 쉽게 하는 사업을 추진한다면 이 사업은 엄청난 양의 반도체 투자를 필요로 할 것이다.

 

 이 교체 과정에서 핵심은 결국 이 모든 교체의 목적이다. 무엇을 위해 국민들은 이것을 이렇게 바꾸어야 하는가? 이 무제는 마치 왜 스마트폰이 이제 더 이상 차이가 없는데 바꿔야하는가? 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지금도 그냥 살 수 있는데 왜 바꿔야 하는가? 단순히 경제를 굴리기 위한 이유인가?

 

 이제 대한민국의 경제는 충분히 성장했고 국민들은 단순한 경제 성장 그 이상을 추구한다. 더 이상 삶을 포기하고 경제적 가치를 위해 희생하는 삶을 원하지 않는다. 클라우드 산업의 발전은 이 클라우드 인프라가 국민들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가에 답해야 한다. 지금까지도 한국은 따라잡기 위해서 왔다. 애플을 따라잡아 스마트폰을 개발하고 꾸준히 바르게 바꿔온 국민들이다. 그러나 이제 따라잡을 것은 이 세계에 없다. 클라우드 경제 체제는 최첨단의 체제이고 기술적 기반만 존재할 뿐 어떤 가치를 이 인프라가 국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지는 앞으로 알아가야 할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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