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대한민국 경제 전망

 대한민국은 구조적 변화를 겪고 있다. 지금까지는 구조적 변화가 올 것이라고만 말을 했지만 이제 우리는 이 변화에 중심에 있다고 생각된다.

 최근 대한민국의 자영업자들은 빠른 속도로 소멸하고 있다.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내수침체로 정상적인 경제 생활을 못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대부분 퇴직한 5060세대들이다. 이들이 시작한 자영업이 무너질 경우 이들은 극빈곤층으로 많이 내몰릴 가능성이 있다. 

 부동산 가격이 급락한 후, 다시 반등했다. 그러나 앞으로 과연 부동산이 이전과 같이 유동성이 몰리게 될까? 나는 그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집을 소유한 사람들은 대부분 5060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대한민국 가구 자산의 특징상 부동산 자산에 몰려있고 현금이 없다. 은퇴 후, 부족한 현금을 마련하고자하는 욕구는 결국 부동산의 유동화를 일으킬 것이다. 결국 집을 팔고 자산을 일부 유동화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집값이 떨어지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오르기도 힘들다. 집값에 대한 기대심리가 줄어들면 집값은 점차 오르지 않을 것이고 오르지 않으면 내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중유동성은 어디로 가는가? 나는 시중의 유동성이 주식시장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중유동성이 주식으로 가면 많은 기업들은 가장 좋은 방식으로 자본을 조달 할 수 있게 되고 이러한 기업자본조달의 활성화는 스타트업이나 여타 기업들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이러한 주식시장의 활성화로 인한 기업자본조달이 쉬워지는 것과 함께 기업 거버넌스도 선진화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의 주인은 주주라는 생각으로 나아가 사회라는 생각으로 기업 지배구조가 바뀔 것이다. 누가 기업을 이끄는가는 혈통이 아니라 가장 잘 이끌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우월함이 아니라 그것을 잘하기 때문인 것이다. 김밥을 마는 것을 잘하는 사람이 김밥을 말고 경영을 잘하는 사람이 경영을 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차등이 없다. 자신이 해야할 일을 한다는 점에서 평등한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는 균질화된 사회이고 그래서 극도의 경쟁사회였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이 이제 점차 깨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MZ세대들은 별로 경쟁적이지 않다. 앞으로 사회는 더욱 덜 경쟁적으로 변할 것이다. 리더를 하는 것이 좋은 것이고 팔로워가 되는 것은 않좋은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리더의 무게를 짊어지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고도로 높은 윤리 수준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어설픈 사람이 리더가 되었다가는 감옥과 가정 파탄이 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것을 MZ세대들은 어렸을 때부터 봐왔다.

 

 기업 또한 재벌의 것이 아니라 사회의 것이고 하나의 플랫폼이 될 것이다. 사회 경영의 한 수단이자 방법인 것이다. 경영을 잘하는 사람을 경영자의 책임과 권한을 주고 충분히 지켜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이사회가 경영자를 채용하는 주주 경영의 방식이다. 우리나라처럼 기업의 소유자가 경영권을 가지고 경영을 하면 의사결정의 효율성은 증대되지만 비합리적 결정의 리스크는 더 커진다. 또한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불필요한 의전과 같은 생산과 관련이 없는 부분에서 손실이 계속 발생하고 이러한 것들의 누적은 결국 비합리적 의사결정이 누적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것을 결국 기업의 생산성을 약화시킨다.

 

 이제 재벌 구조가 사회발전에 방해가 되는 수준에 이르렀고 이마트 그룹, 삼성 그룹, SK 그룹 등 각각의 그룹들의 오너리스크는 매우 크다. 또한 고려아연이나 한진그룹처럼 다른 자본에 재벌이 기업 경영권을 잃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몇몇 재벌기업들이 다른 자본에 기업을 뺏기고 그래서 구조적으로 개혁되어 더 좋은 기업이 되는 사례가 생기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야 재벌들도 긴장하고 결국 최선의 이익은 경영권을 포기하고 주주 및 사회적 기업의 형태로 변화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기업이 재벌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체적인 문화를 가질 때, 그러한 기업들이 많아지면서 우리나라 산업생태계는 더욱 풍부하고 다양해지며 경제는 더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리하면 고령화로 인하여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면서 시중의 유동성이 주식시장으로 몰리고 그러면서 기업의 자본조달이 쉬워지고 그러면서 다양한 기업들이 성장하고 이와 발맞추어 기업 거버넌스 구조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이 성장하여 재벌구조가 상당부분 변화하여 사회적, 주주친화적 기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변화에서 중요한 것은 60대 이상의 사람들에게 주택자산을 유동화하는 다양한 금융상품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택연금이나 그외 여타 새로운 금융기업을 적용한 다양한 자산유동화 상품을 만들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지금 망하고 있는 수많은 영세 자영업자들은 자영업자에서 임금근로자로 전환시키고 관련 산업들을 최대한 대형화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리스크가 줄고 사업 효율성이 높아진다. 혼자서 성공하는 시대는 이제 갔다. 함께 해야한다. 무너지는 자영업자들을 모으고 하나의 기업으로 만들어 임금근로자화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중소기업들도 그러하다. 전기자동차 등 신산업의 등장과 노동력 집약적 산업구조를 가진 중소기업들을 묶고 제거해야할 산업을 제거하여 중소기업들도 대기업화하며 재편시켜야 한다.

 

지금은 금리가 인하되는 시기다. 많은 불확정성이 시장에 존재한다. 그러나 이 안개가 걷히고 방향성이 분명해질 때를 대비해야 한다. 나는 미국중심에서 다른 국가들로 자본이 이동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생각하는 신흥국으로 갈 가능성이 높고 그 중 나는 대한민국이 가장 수혜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AI 서비스들이 수많이 등장하고 있지만 급격한 생산성 향상을 일으켜 주가를 계속해서 부양할 수 있는 수준의 AI서비스는 등장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한다. 딥러닝의 한계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대신 전기차 시대로 변화하는 것이 AI보다 더 투자 매력도를 높일 것이다. 이것은 분명 확실하고 실행가능하며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다. 확실한 변화에 먼저 투자하고 불확실한 것에 조금 투자해야 한다. AI는 수많은 자동화 기술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수백년, 나아가 수천년 전부터 자동화를 해왔다.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실제 직장에서 근무해보면 생산성 향상은 대단한 기술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작지만 구성원들의 참여가 높은 기술에서 시작된다. 

 

 

 

 

 

 

 

 

 

 

 

 

 

 

 

 

 

 

 

나는 부동산 자산시장의 미래가 리츠와 PPP에 있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사업특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본조달의 방식이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조달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사업의 리스크를 어떻게 나눌지에 대한 것이다.
만약 사업이 100% 수익성이 보장된다면 모든 리스크를 자신이 가지고 가장 저리로 돈을 빌려 오면 될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리스크가 완전히 없다면 자본조달이 가장 쉬운 사람이 그 사업을 직접할 것이다. 따라서 돈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돈을 직접 투자할 것이다. 그리고 가장 자본조달이 쉬운 주체는 국가다. 국가는 그 나라의 가장 낮은 금리의 채권을 발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을 그 나라의 기준금리라고 한다.
 
100% 수익성이 보장되는 사업만 존재하는 세상에서는 정부가 모든 사업을 진행할 것이다. 마치 공산주의 정부처럼 말이다. 그러나 공산주의 정부가 실패했듯, 모든 사업에는 리스크가 존재한다. 즉, 미지의, 아무리 노력해도 알 수 없는 어떤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 리스크 혹은 불확실성의 차이로 인해서 자본조달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보통 수학적으로 불확실성을 표현할 때에는 표준편차와 같은 개념을 이용한다. 즉, 대표값에서 다른 가능성들이 얼마나 넓게 퍼져있는지를 알려준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최종 이윤이고, 최종 이윤의 확실성은 다른 가능성들이 별로 없어야 한다.
 
이윤이라는 것은 최종 결과물의 스칼라 값이다. 모든 질적으로 다른의 가치들이 projection(말 그대로 vector가 scalar가 되듯)된 것이다. 건설 프로젝트에서는 다양한 리스크가 혼재한다. 예를 들어, 폐기물 처리 공장을 짓는 건설프로젝트에서는 최종적인 폐기물 처리 공장의 수익이 중요하다. 이 수익이 타당성이 존재하면 이제 그 타당성이 실패할 리스크를 계산하고 그 리스크가 감당할만 하면 사업은 진행된다. 수익이 나는 사업 아이디어는 지천에 널려있다. 문제는 각 사업의 리스크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폐기물 공장 인허가 리스크(민원 리스크 포함)이 우선 해결되어야 한다. 해결된 이후에도 엔지니어링 리스크(설계, 시공 등)가 존재하며, 또한 이러한 것들이 어느 정도 계획이 잡혔더라도 다시금 투자금을 조달해야하는 리스크가 존재한다. 그 외에도 노사 리스크도 있다. 노동자의 임금 협상 결렬이나 각종 월례비, 장비 및 채용 강요 등으로 인한 직간접적 공사비 문제, 노조의 단체 행동으로 인한 공사지연 등의 문제들도 처리해야 한다.
 
스칼라의 이윤값의 분포는 이러한 리스크의 발생 정도에 따라서 달라진다. 리스크가 발생하더라도 여러 장치들을 통해서 이윤의 변동을 줄이면 이것이 리스크 헷징이 된다. 보험은 좋은 장치 중 하나이다. 건설 도급계약에 흔히 존재하는 지체상금과 같은 규정도 공기 지연에 따른 손해를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여러 리스크 중, 아무튼 준공이 예상되로 되고 품질 수준이 계약된 정도 이상이면 사업리스크만 존재하게 된다. 건설사업관리를 잘한다는 것은 사업주에게 오로지 사업리스크만 부담하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사비용증가, 공기지연, 각종 건설 도중 인허가 및 민원, 시공사와의 분쟁, 무리한 설계변경, 안전, 품질, 공종간의 간섭 등의 여러 문제들을 사전에 차단하여 사업주가 사업리스크에 만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다.
 
건설 프로젝트는 프로젝트마다 그 특성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시공외의 것에서 프로젝트의 특성이 드러나는 문제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그러한 프로젝트의 특성에 맞는 적절한 사업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인 시공의 문제는 시공사 및 전문건설업체가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주요한 공정, 주요한 품질 및 자재에 있어서는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특별히 공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사나 안전, 품질상에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공사를 찾아내어 특별히 관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관리는 통제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하여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그러므로 리스크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이 건설 프로젝트에서 어떤 관리 계층에 있는지를 또한 염두할 필요가 있다. 너무 사소한 것들에 집착을 하는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다보면 너무 많은 에너지를 하위 계층의 관리 대상에 집중하여 넓은 그림을 보지 못하여 정작 자신이 해야할 일을 하지 못할 수 있다. 작업 반장의 관리, 하도급 사의 관리, 시공자의 관리, 감리자의 관리, 건설사업관리자의 관리, 발주자의 관리는 모두 다 다를 수 밖에 없다. 극단적으로 발주자가 작업반장 수준에서 관리를 한다고 생각해 보자. 아마 근로자도 그렇게 관리를 하는 발주자도 모두 힘들 것이다. 
 
건설사업관리자는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는 것과 같다. 사실 그러나 그런 상태로 있는 것이 올바른 건설사업관리다.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는 것처럼 시작해야 시공, 감리, 발주자를 모두 Orchestration 할 수 있다. 지휘자는 막대기를 들고 사실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를 짚을 수 있는 섬세한 주의력이 필요하다. 또한 문제를 짚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각종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고 협의하고 타협하도로 이끄는 능력도 중요하다.
 
흥미로운 것은 세상은 변증법적으로 움직인다. 작은 문제들은 하부 계층에서 처리되어 상부 계층으로 잘 올라오지 않는다. 하지만 큰 문제는 작은 문제들이 해결되는 가운데서도 조금씩 모여 상부로 올라오게 된다. 큰 문제가 수면위로 올라오기 전에 최대한 제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큰 문제가 올라와야 한다면 그것을 해결할 방법을 큰 문제가 수면위로 올라오기 전에 찾도록 미리 노력을 해야한다. 

잠깐 딴길로 샜지만, 아무튼 리츠와 PPP를 결합하면 한국의 높은 부동산 투자 수요와 부족한 정부의 재원과 사업리스크 부담능력, 정부 정책 결정의 비효율성을 한번에 해결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투자 수익을 공모를 통해 공공에게 되돌려 줄 수도 있다. 또한 사업투자에 공모형투자자들이 많이 참여하면 사업 투명성도 자연스레 해결된다.

사업관리를 매우 투명하면서 실시간 정보공유를 하면 공모투자가 활발해지고 이로 인해 정부와 민간의 인프라 사업협력이 활발해지며 만성적 국가 적자와 인프라부족, 정부의 비효율성과 부족한 사업성 분석 및 계획능력을 해결할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방식의 PPP사업 역량은 해외 인프라 투자 사업에 진출하여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택과 상가 투자등으로 높은 사업리스크를 일반 국민에게 개별적으로 떠넘기는것은 위험하다. 국민에게 필요한 인프라를 제공하고 그로인해 자본 조달을 한 기여를 이익으로 바꾸어 공모투자자들이 가지고 인프라로인한 사회적 가치는 국민이 누릴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투명성이 필수이고 기존의 정부주도형보다 더 투명하고 필요한 인프라를 공급할 수 있다.

나는 MS의 Copilot의 기능을 오늘 보고 놀랐다. 드디어 AI로 인해 산업 전반이 영향을 받고 교육과 경영의 패러다임이 바뀔 수 밖에 없는 시대가 왔다. 지금까지 우리는 변화는 있었지만 근본적인 패러다임에 있어서는 변하지 못했다.
 
교육에서는 여전히 신기술을 사용하고 새로운 기술과 새로워진 지식들을 가르쳤지만 그것들을 가르치는 방식과 그것들을 바라보는 관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식은 양적 축적의 대상이었고 평가는 그 양적 축적을 얼마나 능숙하게 하는지에 달려있었다. 이제는 지식의 양적 축적이 더이상 의미가 없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예전부터 경영은 복잡한 서류와 규정들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졌다. 이 시스템을 위해서 매우 많은 비효율적 에너지가 소요되었다. 종이, 서류공간, 규정에 대한 해석과 그에 따른 서류 작성 등 수많은 시스템 자체의 비효율적인 소비가 이루어졌다. 그래서 하나의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여러사람의 작성 시간과 각종 물자 및 자료가 소요되었다. 그러나 이제 AI를 통해서 복잡한 의사결정 절차를 매우 단순하게 줄일 수 있게 되었다. 보고서의 양식과 의례적인 보고서 및 문서들을 AI가 모두 작성을 해줄 수 있다. 사람은 그저 개념과 방향성만을 잡아주면 된다. 이제 Copilot이라는 프로그램만 봐도 이러한 기능들을 모두 같추고 있다. 예컨데 어떤 계획서 만들 때, 기본적인 제목과 내용에 대한 Outline만 정해주면 PPT를 작성해주고 또 Word 보고서도 써준다. 그리고 Word를 PPT로 전환도 가능하고 PPT를 Word로 작성도 해준다. 또한 PPT 디자인이나 보고서의 형식 및 디자인도 추천해준다. 이 기능은 점차 더 좋아질 것이다. 그 외에도 일정과 메모, 회의록, Onedrive 와 Office 앱들이 모두 통합되어 Copilot을 통해서 Orchestration이 되고 있고 더 효율적으로 변할 것이다.
 
이제 업무는 AI 비서에게 시키고 초안을 작성시키고 우리가 손으로 하기위해서는 여러 프로그램을 통합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업무도 AI가 모두 조율하고 연관시켜 몇가지 추천으로 업무를 수행해 줄 것이다. 그럼 우리는 조금 Trimming만 하면된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기초적인 AI 플랫폼을 MS나 Amazon 같이 글로벌 규모의 기업들과 싸워서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AI 플랫폼 위에서 작동하는 Application에서 부가가치를 창출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내부용 AI 플랫폼, 특정 데이터셋에 적합화된 AI, 여러 Application을 통합한 AI 등과 같은 종류의 AI 제작에서는 우리나라가 훨씬 앞설 수 있고 이러한 것들은 충분히 괜찮은 서비스적(Application적) 부가가치를 창출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대한민국은 저출산과 고령화의 환경을 레버리지로 사용하여(지렛대 삼아) 더욱 AI를 경영환경에 접목시켜 매우 효율적인 기업 경영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으며 사회 전반에 엄청난 효율성을 가져오는 문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이 AI문화를 세계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토양에 있다고 생각한다. 전국민의 IT화는 매우 높고 국민성은 새로운 것을 엄청난 속도로 받아들인다. 언제나 빠른 것을 좋아하고 조금이라도 편한 것을 찾는다. 과거의 방식에 대한 집착도 없다.

로봇과 AI가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한국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삶의 방식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며 새로운 문화는 자연스럽게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가장 먼저 정부기관의 모든 업무들은 점점 더 빠르게 전산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인허가 절차와 복잡한 문서 양식 및 절차들은 전부 전산화되고 사실상 동사무소에 갈 일이 점점 더 줄어들어 은행처럼 창구의 직원이 필요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금융은 점점 더 전산화되서 각종 금융상품은 한 플랫폼에서 빠르게 비교가능하고 자신의 정보를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가장 최적화된 상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는 더이상 지금과 같은 영업사원은 필요 없을 것이다. 대신 더 고급의 수준에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그런 보험설계사나 자산관리사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세상에서는 자신을 식별할 수 있는 identification 기술과 그에 따른 보안기술이 매우 중요해 질 것이다. 물론 오로지 기술만 필요한 것이라고는 생각 안한다. 오히려 주기적으로 자신의 identification 정보를 갱신하기 위해서 identification 전문 회사 및 정부 기관에 가야하는 것이 일상화 될 수 있다. 큰돈을 보내거나 등기와 같은 중요한 행위를 할 때는 반드시 대면을 통한 identification이 강제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얼마나 확실하게 identification이 가능한 지의 여부일 것이다.

점점 더 Seamless한 서비스가 일어날 것이다. 또한 재화와 서비스는 모두 서비스로 통합될 것이다. 어떤 것이든지 딱딱하게 구분지어지기 보다 가치를 중심으로 서비스로 제공될 것이다. 재화는 점점 더 그 주도권과 중요성을 상실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비스와 그 서비스가 가져다주는 가치 그 자체가 중요해질 것이다. 서비스의 궁극적 목표인 가치는 결국 정신적인 만족 및 문제 해결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편안한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 수많은 서비스들이 등장 할 것이다. 편안한 마음을 위해서 좋은 음식, 옷, 집, 차, 휴대폰, 컴퓨터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고통스러운 삶이 아니라 편안하고 즐거운 삶으로 가고 싶다. 그리고 나머지는 그것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진정으로 편안한 마음으로 살기 위해서 우리는 물질적인 제약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현대문명이 일어난 것이다. 이제 인간 육신의 수준에서 물질적 제약을 거의 벗어나는 세상이 거의 다 왔다. 이제 가장 인간을 노예화 하는 노동으로 인한 시간의 제약이 점점 사라질 것이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 땀을 흘려 일을 하여 소를 기르고 밭을 매는 일은 점점 없어질 것이다. 이제 로봇과 컴퓨터가 이러한 일들을 모두 해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오로지 자기 자신의 내면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이제 정신적인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분열되고 혼란스러운 내면의 정신세계에 강력한 빛과 질서를 부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더이상 먹고살기 위해서 일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AI가 할 수 있는 것에는 충분히 제약이 존재하고 인간은 여전히 창조적이고 중요한 의사결정자로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Deep learning의 기술적 수학적 한계도 존재하여 엔비니아나 M7 주식들의 과도한 벨류에이션에 대해서 캐즘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방향성이고 진정으로 강력한 강인공지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지금의 기술에서도 충분히 의지만 있다면 엄청난 업무들을 줄일 수 있다. 프로세스를 간소화하고 표준화하고 그것을 다시 전산화하면 된다. 그리고 이러한 여러 프로세스들을 AI에게 학습시켜 복합적 업무도 간단하게 자연어로 처리시키면 된다.

우리는 이제 진정으로 정신문명을 이룩할 수 있는 토대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을 인류가 진지하게 물으며 살 수 있는 세상이 온 것이다. 나의 마음의 고통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우리는 왜 이토록 불안하고 초조한가?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가? 이러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깊이 숙고하며 내면의 고요한 평화를 발견할 수 있다. 깊은 명상을 하고 선정에 들며 내면의 불안한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며 강력하고 고요한 평화를 자기 자신에게 깃들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계평화는 저절로 될 것이다. 세계는 내면의 투영이다. 우리 인류 의 대다수가 불안하고 혼란할 때, 세상은 혼란하게 보일 수 밖에 없다. 지구에 살고있는 수많은 중생들이 내면의 평화를 조금씩 더 얻기만 해도 세계는 더욱 평화롭고 질서있으며 즐거운 세상이 될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고통스러울 때, 세상은 고통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평화롭고 질서가 있을 때, 세상은 가지런하고 평화롭다.

가만히 우리의 내면을 살펴보면 세상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다. 끊임없는 경쟁으로 피폐해지고 집착으로 얼룩진 마음을 보면 세상의 전쟁과 다툼이 너무도 당연하게 보인다. 우리의 탐욕과 이기심은 우리 모두를 고통의 바다로 몰아넣었다. 모두 함께 같이 잘사는 법을 찾기보다 자신이 남들을 짓밟아야 된다는 잘못된 생각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상대가 잘 되야 나도 더 잘된다. 모두가 함께 잘될 때 진정한 행복과 평화가 있는 것이다. 반면 우리의 교육은 아이들에게 오직 자신만이 앞서야하고 잘나야하며 남들은 자신보다 못해야 좋은 삶을 살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가르침은 실제 맞지 않을 뿐더러 모두를 더 고통스러운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다.

경제학에서도 다른 모든 국가가 함께 잘되야 개별국가의 경제성장율도 높아진다. 고도로 세계화된 세계에서 더이상 뒤로 되돌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물론 지금까지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그 폐해가 많았다. 진정한 세계화는 자본적 논리로 이루어지면 안된다. 자본의 가치체계로 세계화를 조직하면 결국 자본의 탐욕에 의해서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수 밖에 없고 자본을 위해서 사람이 희생되어야 한다. 하지만 반대로 사람을 중심으로 놓고 생각하면 한 사람이 정신적으로 계몽되고 깨어나 존엄함을 간직한 세계시민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자본의 논리가 지금까지 중요했던 것은 생산능력은 매우 늘어났지만 정신적으로 인류를 성숙시키지 못하여 사람들이 물질에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면서 정의로운 분배질서가 왜곡되었고 이로인해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더 경쟁적으로 노동을 해야했고 늘어난 노동시간은 여유를 빼앗고 빼앗긴 여유시간 속에서 정신적 성숙은 요원해졌다. 그러나 이제 선진국에서는 더이상 물질로 행복을 느끼는 경향이 많이 줄어들고 있다. 물건들의 품질은 점점 더 비슷해지고 더이상 큰 차이를 내지 못한다. 그래서 명품과 브랜드가 중요해지게 되었다. 이제 물질적 필요에 의해서 물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 소비를 한다. 또한 이러한 정신적 허기를 물질로 채우기에 조금만 지나면 또다시 물질을 사야하게 되었고 이로인해 여전히 노동시간이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

다행히 로봇과 AI가 노동시간을 현저하게 줄일 좋은 기회를 주고 있다. 로봇과 AI를 통해서 노동시간이 점점 줄어들면 물건은 점점 더 싸질 것이다. 문제는 AI와 로봇보다 더 가치있는 일을 해야 물건이 싸지는 것을 경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교육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창조성을 기르는 교육이 필요하다. 확실한 것은 로봇과 AI가 제공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를 생산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풍요 속에서 부유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기존에 인건비가 커서 직접했던 여러 가사노동과 생산을 위한 반복적이고 불필요한 노동들이 로봇과 AI로 대체되면 실제적으로 중요한 핵심가치에만 시간을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 핵심가치를 생산하더라도 그것을 소비하고 그 소비를 통해서 더 큰 가치를 생산할 수 있도록 선순환이 이루어져야 모두가 잘 살 수 있다. 기존의 부자들은 자본을 축적하고 있기 때문에 로봇들과 AI를 이용하는데 부담이 없기에 그들은 기본적으로 매우 여유로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AI와 로봇들에 접근할 만큼의 자본을 축적하지 못한 사람들은 사실상 사회에서 어떤 자리도 없을 것이다. 이들은 빠르게 소멸되어야 할 대상이 될 것이다. 한 두세대를 거치면서 이렇게 가난한 사람들이 자손을 낳지 못하고 사라지면 오직 자본을 축적한 사람들만 살게 되어 모두가 여유로운 세상에서 살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내면이다. 우리의 내면이 안정되지 못하면 아무리 물질적 풍요가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다시금 고통의 바다로 제발로 들어갈 수 밖에 없다. 다시금 경쟁하고 고통을 가하고 전쟁을 하고 파괴한다면 그 폐혜는 오히려 전례없는 고통속으로 모두를 몰아갈 것이다. 따라서 자본축적 여부를 떠나 모두가 다 같이 잘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만이 필연적이고 유일한 가치라는 것을 모두가 깨달을 수 있도록 교육해야한다. 상대의 고통이 나의 고통과 같고 나의 고통이 상대의 고통과 같다. 우리 모두가 다 같이 잘살아야 한다.

어려움을 겪는 이웃은 우리가 도와야 한다. 그러나 그 도움은 그 자신이 그 고통으로부터 나올 수 있도록 지도의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단순히 위기를 모면하게 해서는 차라리 돕지 않는 것이 낫다. 그들은 공동체에 끊임없이 요구하다 그 선이 넘어 지원이 끊긴다면 불만을 제기하고 공통체에 위해를 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이러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자신이 사회에 어떤 가치를 일으켰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남보다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출세해서 남들의 고통을 보며 자신의 승리를 기뻐하는 불쌍한 사람들의 나라가 되었다. 우리가 인류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보다 더 많이 누린다면 그 정당성이 어디서 비롯되는지에 대해서 진정으로 깊이 생각 해 보아야 한다.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저들보다 더 많이 주셨는가? 더 잘 입히시고 더 잘 먹이시는가? 하나님이 진정으로 선하시다면 모두를 사랑하실텐데 왜 차별을 하는 것인가? 누군가는 이 질문에 선민의식으로 답을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반만 맞는 답이다. 선민이라면 하나님이 더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어찌 하나님이 자신의 자식들을 차별하여 사랑하겠는가? 그런 하나님이라면 제대로 된 하나님인지 의심스럽다. 오히려 우리를 다른이들보다 더 잘 입혀주시고 먹이신다면 우리가 그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사역을 담당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기르시듯 우리도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야 한다. 그들의 성품이 부족하여 먹이고 입혀도 스스로 고통의 문을 열고 들어가기에 하나님도 그들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태어났다. 그분의 영광이 이 땅에 펼쳐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넘어 세계와 인류를 품에 안아야 한다.
 
 
 
 
 
 
 
 
 
 
 
 
 
 
 
 
 
 
 
 
 
 
 
 

의미는 맥락에서 나온다. '나는 왜 사는가?'
과거와 미래 사이의 현재에서 우리는 삶의 의미를 헤아린다.
그러나 과거는 끊임없이 현재의 필터에 의해 그 해석이 달라진다.
과거는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미래는 끊임없는 불확실성의 영역이다.

과거는 집착이고 미래는 추구다.
집착과 추구는 고통의 씨앗이 된다.
세상은 늘 변하기에 어떠한 대상에 집착을 하면 그것을 잃는 고통이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추구는 끊임없는 결핍이며 고통을 낳는다.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기회는 지금 이 순간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미래와 과거를 초월해야만 한다.
시간을 초월해 진정한 자신이 되어야 한다.

의미있는 삶은 현재의 순간에 자신이 어떤 태도로 사는가에 전적으로 달려있다.
의미는 미래에도 현재에도 없다. 오로지 지금 내가 어떤 태도로 이 순간을 살아가는가에만 달려있다.
그러나 자신있는 태도는 진정한 의미를 발견한 사람에게 가능하다.
진정한 의미란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당신 안에 존재하기에 그것을 쫓을 필요는 없다.
오로지 그것을 보여주면 된다.
이 세상에 당신의 태도로서 이미 당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어떤 것도 그보다 더 당신 스스로에게 가치를 가질 수는 없다.

과거의 영광도 지나간 것이며 돌아오지 못한다. 이미 그 우주는 돌아갈 수 없는 곳이다.
미래는 결코 확실하게 알 수 없는 것이다. 미래는 영원히 갈 수 없는 우주다.

우리에게 의미있는 것은 현재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다. 그렇다면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할까?

 

우리가 곰곰히 우리의 유한한 삶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죽음의 순간에서 여전히 의미있는 것이 무엇일지 생각해본다. 결국 내가 가진 육신, 재산은 모두 사라진다. 자신이 가진 지식들도 모두 사라진다. 자신이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 사라진다. 유일하게 남는 것은 내가 남들에게 남긴 것들이다. '나'라는 것은 결국은 소멸할 수 밖에 없다. 오로지 자기자신에게 남는 것은 '내가 내가 아닌 존재들에게 무엇을 했는가'이다. 

 

삶의 올바른 태도는 결국 삶 속에서 내가 아닌 다른 존재들을 위해 사는 것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자기자신을 위하는 것은 의미있는 삶을 사는 것이고 의미있는 삶은 올바른 삶의 태도로부터 시작되며 올바른 삶의 태도는 결국 상대를 위하는 삶의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의미를 찾는다. 그리고 죽음을 뛰어넘는 유일한 의미는 자기자신을 뛰어넘은 의미이다. 따라서 내가 아닌 상대들을 위해 살는 삶이 죽음을 뛰어넘는 의미가 된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 자신을 버리고 타자를 위해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탐욕과 이기심은 무의미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깊은 내면의 영혼은 자기 자신에 대해 집착하는 것이 결국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기에 자신에 대한 집착이 낳은 탐욕과 이기심의 행위들에 대해서 고통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탐욕스러움과 이기적인 것을 볼 때 불쾌감을 느낀다. (물론 무엇이 탐욕이고 이기심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어려움이 있다. 대악은 비정과 닮아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자기자신을 내려놓고 대의를 지키는 것에서 숭고함과 고귀함을 느낀다. 이것은 이타적 행위에 의미가 크다는 것을 함의한다고 생각한다.

 

'인류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인류를 위해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이 질문을 끊임없지 놓지않고 삶을 살아간다면 나는 매순간이 찬란한 의미로 빛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주위의 작은 그룹의 이익도 좋지만 결국 우리는 거대한 사회의 한 구성원이고 가장 큰 사회는 결국 인류사회다. 어느 때보다 가까워진 지구촌 사회들은 하나의 사회를 긴밀하게 이루고 있다.

 

우리는 거대한 지구 공동체 내에서 이제 불가피하게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만들고 있는 세상은 어떤 세상이며 어떤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가? 이러한 질문을 해야할 시대이다. 우리가 하는 말, 소비, 쓰는 글들은 세상을 만들고 있다. 우리가 매 순간 이러한 선택마다 그 결과를 생각하며 행동할 수는 없다. 그래서 철학이 중요하다. 고도의 복잡한 행위와 표현들의 연속체인 한 사람이 그것들을 통합하여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결국 고도의 철학적 사유 체계로 가능하다. 우리의 가장 밑바닥에 존재하는 철학이 우리가 만들고 있는 세상의 모습이다.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고 믿는 생각으로 산다면 끝없는 투쟁의 연속의 세상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생존을 위해서 투쟁할 필요가 없으며 즐겁게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면 그러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교육이 아이들에게 어떤 철학을 가르치고 있는가? 수능 시험과 학교 내에서 성적 다툼을 하는 사회 문화는 제한된 자원을 치열하게 경쟁하고 투쟁해서 쟁취해야 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전제는 언제나 제한된 자원이다. 하지만 정말 자원이 제한되어 있는가? 이렇게 빠르게 유동적인 세상에서 가치가 그렇게 고정되어 있을까? 가치 체계는 너무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정한 게임을 하기 위해서 무의미한 교육을 하고 있다. 무엇을 가르치는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게임의 룰이 더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제한된 자원이라는 생각과 철학이 만들어낸 결과다. 좋은 것은 한정되어 있고 그 한정된 자원 내에서 다투고 싸워서 얻어야 한다. 정말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아주 비교육적인 철학이다.

 

가치는 유동적이고 생기기도 없어지기도 하며 같은 것이라도 사람에 따라 다른 가치가 부여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싸우고 경쟁하며 제한된 틀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히려 창조적인 교육은 가치가 정말 없어 보이는 것의 가치를 찾아내는 것이다. 실제로 부자가 되는 법도 그와 같다. 무가치한 것들에서 가치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것은 물건을 만드는 것일 수도 있고 같은 물건이라도 정말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서 가져다 주는 것일 수도 있다. 이것이 생산과 유통, 영업이라는 업무다. 이렇게 무질서한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며 신뢰를 창조하는 일에서 진정한 부가 나온다.

 

기존 시스템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파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다. 기존 시스템을 애초에 창조한 사람들은 자기 자식에게 물려주려고 한다. 가지지 못한 채 제한된 가치체계를 가진 사람들은 좋다고 믿는 것을 어떤 수를 써서든 쟁취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다. 그래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간에 다툼이 생기게 된다. 자신의 가난이 부자의 탓이라고 믿는 것은 한편으로는 안타깝고 심하게 말하면 비굴한 것이다. 그러한 상황을 극복할 힘과 능력이 가난한 사람에게도 있다. 그것을 믿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시스템의 장벽이 크다. 하지만 그 시스템을 넘기 위해서 수많은 연구와 노력을 하다보면 분명히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이러한 기회가 꼭 찾아온다고 절대로 확신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우리가 그런 흔히 말하는 시스템의 장벽을 뛰어넘는 행위는 그 정의상 우리 내면에 깊이 박힌 시스템적인 마인드로는 예측이 힘든 부분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것을 리스크라고 부른다. 시스템이 예측할 수 없는 부분에 진정한 자유로운 삶, 부유한 삶의 기회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안정적인 삶을 살기위해서 고군분투한다. 그래서는 오히려 결코 안정적인 삶을 살 수가 없다. 과도한 리스크는 분명 무리가 있다. 하지만 부자들은 리스크를 싫어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부자가 짊어지기 싫어하는 리스크를 해결하고 그에따른 정당한 거래 조건으로서 물질적 부를 요구하는 것이 가난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돈을 버는 것이 힘든 것은 당연하다. 힘든 것은 가만히 놔두면 무질서하게 변하는 것들을 관리하고 에너지를 불어넣어 질서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가 일이라고 하는 것들이 크게 새롭고 창조적인 것들은 없다. 대부분 기존의 메뉴얼을 기반으로 관리하며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질서가 생기고 나면 여유와 안정이 생기고 그러한 안정과 여유를 기반으로 연구를 하며 새로운 메뉴얼을 만들 준비를 해야한다. 

 

이것이 무질서에서 질서를 만드는 생명의 순환, 봄여름가을겨울의 원리이다. 추운 겨울은 무질서와 같다. 그 시기는 받아들임의 시기이고 버리는 시기이다. 자신을 내려놓고 세상이 가져다 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불필요한 것들을 모두 버리고 오로지 핵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핵심만 남았을 때, 봄이 온다. 

 

봄에는 추위가 점점 줄어들고 핵심만 남은 철학을 바탕으로 질서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이 질서를 창조하고 드러나 형식을 갖추면 여름이 된다. 그러나 여름이 가진 명확한 질서는 그 명확성 만큼 취약성, 리스크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 단단한 질서는 깨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깨짐은 처음에는 드러나지 않고 안정감과 평화로움을 준다. 그래서 풍요의 가을이 온다. 하지만 가을이 지나가며 기존 질서는 무너지고 깨진다. 그래서 다시금 형식은 무너지고 핵심 내용만 살아남을 수 밖에 없는 겨울이 온다. 

 

겨울에는 깨진 것을 돌이켜보고 다음에 깨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비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비를 하는 힘은 사실 핵심 가치, 철학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다. 이 핵(亥)이 바로 겨울이다. 겨울은 외부가 양이고 내부가 음이다. 그래서 중심은 양이된다. 마치 주역 8괘의 감괘의 가장자리가 음이고 양이 중을 차지하는 이유다. 누구나 겨울은 보통 싫어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삶의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내가 겉보기엔 음이기 때문이다. 환경은 양으로 나를 짓누른다. 그러나 그렇게 짓눌릴 수록 본질이 드러난다. 이때는 정말 자기실력이기 때문이다. 삶은 겨울에 그 진실이 드러난다. 

 

 

 

 

 

 

 

 

 

 

 

 

 

 

 

 

 

 

 

 

내가 생각해 보건데, 우리가 겪는 삶의 심각한 문제의 근원에는 뿌리깊은 자신의 '앎'이라는 착각이 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보면 '앎'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르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것이 좋고 나쁨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욕심이 생기고 경쟁을 하고 다투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우리가 어떤 것이 좋고 어떤 것이 나쁜지 알고 있는가? 실제로 이것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언제나 좋은 것을 얻고 나쁜 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하지만 정말 나쁜 것이 무엇이고 정말 좋은 것이 무엇인가? 삶은 계속해서 알 수 없는 것들을 가져다 주고 우리는 끊임없이 판단을 하며 슬픔과 기쁨을 오간다. 하지만 정말 우리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다. 각자의 가치관이 다르고 관점이 다르기에 좋은 것은 어떤 절대적 기준이 없다.

 

좋은 것이라고 하는 것은 규정하기 매우 어렵다. 그래서 삶이 가져다 주는 모든 것을 감사하고 축복하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축복하고 감사할 때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우주는 매우 효율적으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자연선택도, 빛의 경로도 가장 최적의 효율성을 가지는 개체와 경로를 선택한다. 마찬가지로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도 우주의 기준에서는 가장 최적의 효율성을 가지는 경로를 따라가도록 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다가오는 것들은 제한된 우리의 기준에서 좋고 나쁨이 달라지지만 우주의 기준에서는 가장 좋은 가치를 지닌 것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삶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는 따라서 긍정성을 바탕으로 해야한다. 그리고 고통과 어려움, 시련도 그 안에서 가능성, 밝은 미래를 봐야 한다. 비록 우리가 부족하여 현재 어떠한 희망도 없어보이지만 세상은 우리에게 최고의 것은 언제나 지금 우리에게 오는 것들이라고 믿어야 한다. 고통은 변화의 에너지다. 고통없이는 인간은 변화가 힘들다. 고통이 오면 그것을 직면해라. 그럼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다. 자신이 무엇인가 잘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으로부터 배우면 된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몰라도 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은 현재 왜 고통이 왔으며 어떻게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야하는지 모른다는 상태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아는 사람이다. 우리의 한계는 너무도 명확하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알면 현실을 바꿨을 것이다. 현실이 바뀌지 않는 것은 우리는 모르기 때문이다. 무엇으로 현실을 바꾸어야 하는가? 현실을 바꾸는 것이 지혜이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불안하고 두렵고 무력한 자기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우리가 자연재해와 같은 거대한 자연의 변화에서 느끼는 무력한 인간의 모습을 보듯, 우리 자신도 삶이라는 거대한 자연의 흐름 앞에서 겸손할 수밖에 없다.

 

걱정이 많은 삶은 대부분 우리의 오만으로 인해 생긴다. 실로는 아무것도 모르며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 자신의 무지, 무능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삶의 흐름이 우리를 이끌며 그때 가벼운 마음이 생겨난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말고 즐겁게하되 어떠한 앎도 만들지 말자. 물론 우리는 어떤 논리를 적용하고 계획을 세우며 예측을 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우리의 시작이자 끝은 아무것도 모르며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의지는 너무도 약하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다. 의지라고 하는 것도 환경적 산물이다. 그러므로 엄청난 의지를 가지고 무엇인가를 성취해야한다는 환상에서도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의지력으로 해결하려고 하지말고 환경적인 한계를 받아들이고 그 한계 내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추구하자. 그러나 그 추구를 너무 강하게 할 필요는 없다. 삶이 가져다주는 것들을 호기심과 열의로 헤쳐나가면 올바른 방향을 찾으며 스크레스와 불안에서 크게 벗어난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결코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의 삶과 비교하면 안된다. 이 비교라는 행위의 전제는 동일성이다. 동일한 어떤 가치기준으로 비교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너무도 다채롭고 복잡하기 때문에 서로다른 삶을 동일한 가치기준으로 비교하는 것은 불안과 걱정, 시기심만 키워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놓칠 가능성을 높인다.

 

자신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진정한 지혜가 필요하다. 이것이 진정한 앎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앎'은 알려고 노력하는데 있지 않다. 또한 이 진정한 '앎'은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마치 우리가 심장을 뛰게 하는 법을 모르는 것과 같다. 우리는 모르지만 계속하고 있다. 우리는 정확하게 팔을 어떻게 들어올리는지 모른다. 그러나 들어올리고 있듯 말이다. 우리는 우리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모른다. 그러나 진정한 '앎'은 자신을 변화시킨다. 그러나 우리의 제한된 의식은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하는지 인지하기 힘들다. 충분한 어느정도 인식가능한 수주에서야 자신이 조금 변한 것 같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진정한 '앎'은 변화 그 자체다. 알았다면 변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인식하고 그것을 깨달았다면 이미 우리 자신은 변화되는 중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세상의 속도로 변화되는 중이다. 이 변화를 의식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오로지 현재 자신이 어떤 태도로 살아가는 것 많이 무의식적으로 쌓이고 임계치를 넘어 우리가 느끼는 변화된 자신으로 나타난다.

 

현재 자신이 어떤 태도로 삶에 임하는가가 유일하게 의미있는 것이다.

 

 

 

 

 

 

 

 

 

 

 

 

 

 

 

 

 

 

 

어느 조직이나 시작은 가장 밑이다. 그래서 시야도 좁을 수 밖에 없다.

위에서 어떤 시각으로 아래를 보는지를 모른다면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을 사회 초년생은 겪을 것이다.

따라서 사회초년생은 항상 '내가 사장이라면'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야 한다.

 

이 패러다임으로 직장생활을 하면 많은 것이 보인다.

처음 일을 시작하면 회사와 신입사원은 서로 신뢰를 쌓아야 한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어렵고 고급의 일은 주기 힘들다. 입장을 바꾸어서 '내가 사장이라면' 현재 자신과 같은 수준의 사람에게 크고 중요한 임무를 맡기겠는가? 따라서 우선 회사에 있으면서 회사가 나를 믿을 수 있도록 신뢰를 쌓아야 한다.

 

처음에는 조금 원하지 않는 업무를 맡을 수도 있다. 그리고 원하지 않는 부서에 배치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회라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야할 일을 하는 곳이다. 꼭 처음에 좋아보이는 일이 아니더라도 거기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발견하고 감사하며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일을 할 때, '내가 사장이라면' 이 업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를 생각해 봐야한다. 그리고 어떤 업무를 한다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보일지라고 누군가는 해야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그 가치와 이유, 목적을 연구해야한다. 그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지나치면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할 수 있는 재료를 잃는 것이다.

 

회사에서 바라보는 '나'는 사실 대부분 그저 어떤 업무가 돌아가게 하기 위한 존재일 뿐이다. 이 사실을 최대한 빨리 인정해야한다. 그러므로 회사를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것을 사실 회사도 원한다. 회사에 의존하기보다 회사에서 독립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 어떤 자질을 회사에서 가장 잘 갖출 수 있는지를 연구해야 한다.

 

- 회사는 무엇을 제공하는 곳인가?

회사는 업무를 위한 어떤 인프라를 제공한다. 월급조차도 회사의 입장에서는 직원이 생활을 하야 업무를 하기 때문에 주는 것이다. 이러한 인프라를 혼자서 만든다면 엄청난 리스크와 시간,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인프라를 너무도 당연하게 여긴다면 회사에서 아주 좁은 일부의 업무에 자신의 시야가 좁아지고 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능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 비록 회사의 인프라가 당연하게 작동하지만 기본적인 체계와 원칙을 이해하려고 해야한다. 항상 회사에서 생활을 할 때, 왜 이것이 이렇게 작동하는지를 생각해보고 물어보고 이해하려고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나중에 어떤 사업을 하거나 다른 회사로 가더라도 인프라의 기본적 구조는 동일하기 때문에 회사의 작동방식을 이해하면 회사의 핵심이 어떤 부서고 다른 부서(인사, 전산, 영업 등)들이 무엇을 하는지 등을 이해할 수 있다.

 

- 자신의 회사 공시 보고서 읽어보기

자신의 회사가 코스피와 같은 거래소에 등록된 회사라면 매 분기, 반기 별로 자신의 회사에 경영상황을 정리한 보고서를 써서 제출하게 된다. 이러한 보고서는 회사의 경영상황을 잘 알 수 있고 회사가 어떤 상황이며 재무적으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다. 따라서 회사 공시 보고서를 보면서 회사의 주요사업과 방향성, 재무 상태 등을 잘 이해하고 있으면 회사에서 자신이 어떤 미래를 꿈꾸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그 회사가 추구하는 미래방향으로 자신을 준비하면 된다. 또한 회사가 추진하는 주요 사업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쌓으려고 노력할 수도 있다. 그 외에도 재무 상태 등을 통해서 회사의 성장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자신이 다닐 회사를 선택하는 것 또한 이러한 공시보고서도 보고 회사의 주요 사업 및 미래 방향성을 보고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 사장처럼 생각하면 사장이 된다.

신입사원 때부터 사장처럼 생각하려고 노력하자. 사장처럼 생각하면 핵심이 보이기 마련이다. 그럼 중요한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빠르게 배울 수 있고 지시사항들에서도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판단하여 일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빨리 주요한 업무와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 있게 되면 너무 많아보이는 업무량도 찬찬히 시작할 수 있다. 또한 나아가서 프로젝트 내에서 핵심 가치를 파악하고 그것을 어떻게 이룰지를 생각하는데 집중하자. 비효율적으로 돌아가는 조직은 업무량이 매우 많다. 그러나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조직은 한가하다. 핵심가치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적절하게 하는 전략은 효율성을 높인다. 업무가 너무 많다고 느껴진다면 무엇이 핵심인지 파악을 못하고 있다는 것과 같다.

 

회사의 사장처럼 생각하려고 하면 회사의 핵심 가치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핵심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 자신이 어떤 부분의 일을 하고 있는지를 알게된다. 핵심가치를 창출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구조조정의 바람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그리고 승진과 다양한 기회가 많아진다. 또한 사장처럼 생각하면 회사 시스템 자체를 이해하고 개선점을 떠올릴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만약 회사를 나와서도 자신이 회사를 충분히 차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

 

- 국가적 관점에서 산업과 회사를 바라보기

자신이 하는 업무가 아주 작은 업무일지라도 단순히 회사를 넘어 산업과 국가적 관점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회사는 어떤 산업의 일부분이다. 그래서 그 산업군이 창출하는 가치의 일부분을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회사가 산업군의 핵심가치를 창출하는가? 아니면 간접적인 가치를 창출하는가? 핵심가치 창출의 어떤 부분을 만들고 있는가? 이러한 것들을 계속해서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산업군이 국가적 규모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도 생각해야 한다. 국가에 중요한 핵심산업인가? 아니면 주변적인 산업인가? 자신의 국가에서 성장에 한계가 있는 산업인가? 등을 계속해서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회사를 다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회사를 다니면 자신이 단순히 월급을 받는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한는 것으로 생각되고 그래서 자부심과 비전이 생긴다.

 

어떤 일이든 그것은 필요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하는 일이 필요가 없는 일이라면 그 일을 하지 않고 그 일이 원래 제공하던 가치를 제공하려고 해야한다. 자신이 사회에서 필요없는 일을 하고 있다면 오히려 일에 중심을 두지말고 어떻게 자신이 있는 산업군에서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를 통해 사회에 필요한 가치를 일으킬지를 고민해야 한다. 또한 자신이 산업군에서 어떻게 가치를 입증하고 제도적으로 뒷받침되는 자격증 및 여러 사항들을 이해해서 자신의 커리어를 갈고 닦아야 한다.

 

월급을 받은 만큼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 업무의 주체로서 일을 해야한다. 업무에 책임을 지고 주체적 사고를 하면 사장의 일을 대신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사장처럼 일을 하게된다. 이러한 삶의 태도는 자신을 사장으로 만들어 간다. 또한 이러한 삶의 태도를 허용하지 않는 회사라면 자신을 노예화 하는 회사다. 이러한 회사를 다니는 것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사장의 입장에서 회사를 보면 공정한 보상과 공평한 업무 분배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 수 있다. 모두가 자신이 손해를 보고 좋은 것을 차지하려고 하는 조직에서 효율적인 자원의 분배는 정말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조직에서는 어느정도의 손해를 감수하며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 사실 >

- 24.5.16에 발간된 KDI 2024 상반기 보고서에 "통화정책은 물가 상승세가 목표 수준에 수렴해 가는 속도에 맞춰 현재의 긴축 기조를 중립 수준으로 점차 완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라고 적었다.

- 전기 대비 24년도 1분기 경제성장율이 1.3% 성장(계절조정)

 

한국의 경제는 고환율로 인하여 수출이 호조세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차후 환율은 더욱 안정세를 취하여 내년 초에는 1200대 후반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환율이 내려가면서 원자재값 및 수입품들의 가격이 하락하면서 내수도 조금씩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KDI 24 상반기 보고서 리스크

- 중동 리스크

- 중국 부동산 발 리스크

- 미국의 대선 이후 보호무역기조 심화

 

1. 중동리스크

 - 중동리스크는 어느정도 완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란과 이스라엘이 서로 한번씩 주고 받았지만 사상자는 없었으며 팔레스타인 전쟁은 장기화 되지만 그 리스크가 주변국과 과도하게 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2. 중국 부동산 발 리스크

- 중국 부동산발 리스크는 이제 충분히 경제에 반영되었고 중국 특유의 정부 주도 경제에서 그 위험성은 중국 밖으로 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1분기에 5.3%의 성장을 기록하여 중국 또한 미국발 고금리 위험에서 벗어날 것으로 추측됨.

 

3. 미국 대선 이후 보호무역기조가 심화될 가능성은 차후 25년도의 문제이다. 어느정도 보호무역이 강화될지는 알 수 없지만 미국의 기본적인 정치 철학 상, 그 정도가 심화되기는 힘들 것이며, 보호무역기조가 강화되면 미국 내에서도 상당한 불만이 제기될 것이므로 이것도 제한적이라고 판단됨

 

- 한국의 부동산pf 발 금융 리스크

여러 신용 평가사의 보고서 및 지표들을 볼 때, 연체율에서 부동산 PF는 위험하지만 그 규모에서 그렇게 크지 않으며 한국의 1분기 경제성장 호조는 환율의 상방을 찍었다는 뜻으로 미국으로 쏠리는 자금들에 대한 리스크가 상당히 줄어 한국내 유동성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아졌고 이에따라 한국은행도 추가적으로 미국과 이자율 격차를 신경쓰지 않고 인하 시그널을 시장에 보내어 고금리로 인한 금융 피로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됨.

 

- 총평

전반적으로 한국의 금융시장은 안정세를 찾아들 것이고 이에 따라 환율도 점진적으로 내려갈 것이라고 생각됨. 정부는 환율 하락 및 고금리 부담 완화로 인해서 생기는 추가적 유동성을 부동산 관련 금융에 충분히 공급하여 전반적인 내수경제의 고금리 및 유동성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음. 그러나 전체적으로 가장 위험한 지점은 지난 것으로 파악됨. 중국 리스크가 해소되면서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완화되어 금리가 인하되면서 전세계 경기가 다시 호조세로 돌아갈 것으로 예상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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