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해 보건데, 우리가 겪는 삶의 심각한 문제의 근원에는 뿌리깊은 자신의 '앎'이라는 착각이 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보면 '앎'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르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것이 좋고 나쁨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욕심이 생기고 경쟁을 하고 다투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우리가 어떤 것이 좋고 어떤 것이 나쁜지 알고 있는가? 실제로 이것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언제나 좋은 것을 얻고 나쁜 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하지만 정말 나쁜 것이 무엇이고 정말 좋은 것이 무엇인가? 삶은 계속해서 알 수 없는 것들을 가져다 주고 우리는 끊임없이 판단을 하며 슬픔과 기쁨을 오간다. 하지만 정말 우리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다. 각자의 가치관이 다르고 관점이 다르기에 좋은 것은 어떤 절대적 기준이 없다.
좋은 것이라고 하는 것은 규정하기 매우 어렵다. 그래서 삶이 가져다 주는 모든 것을 감사하고 축복하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축복하고 감사할 때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우주는 매우 효율적으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자연선택도, 빛의 경로도 가장 최적의 효율성을 가지는 개체와 경로를 선택한다. 마찬가지로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도 우주의 기준에서는 가장 최적의 효율성을 가지는 경로를 따라가도록 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다가오는 것들은 제한된 우리의 기준에서 좋고 나쁨이 달라지지만 우주의 기준에서는 가장 좋은 가치를 지닌 것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삶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는 따라서 긍정성을 바탕으로 해야한다. 그리고 고통과 어려움, 시련도 그 안에서 가능성, 밝은 미래를 봐야 한다. 비록 우리가 부족하여 현재 어떠한 희망도 없어보이지만 세상은 우리에게 최고의 것은 언제나 지금 우리에게 오는 것들이라고 믿어야 한다. 고통은 변화의 에너지다. 고통없이는 인간은 변화가 힘들다. 고통이 오면 그것을 직면해라. 그럼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다. 자신이 무엇인가 잘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으로부터 배우면 된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몰라도 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은 현재 왜 고통이 왔으며 어떻게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야하는지 모른다는 상태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아는 사람이다. 우리의 한계는 너무도 명확하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알면 현실을 바꿨을 것이다. 현실이 바뀌지 않는 것은 우리는 모르기 때문이다. 무엇으로 현실을 바꾸어야 하는가? 현실을 바꾸는 것이 지혜이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불안하고 두렵고 무력한 자기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우리가 자연재해와 같은 거대한 자연의 변화에서 느끼는 무력한 인간의 모습을 보듯, 우리 자신도 삶이라는 거대한 자연의 흐름 앞에서 겸손할 수밖에 없다.
걱정이 많은 삶은 대부분 우리의 오만으로 인해 생긴다. 실로는 아무것도 모르며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 자신의 무지, 무능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삶의 흐름이 우리를 이끌며 그때 가벼운 마음이 생겨난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말고 즐겁게하되 어떠한 앎도 만들지 말자. 물론 우리는 어떤 논리를 적용하고 계획을 세우며 예측을 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우리의 시작이자 끝은 아무것도 모르며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의지는 너무도 약하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다. 의지라고 하는 것도 환경적 산물이다. 그러므로 엄청난 의지를 가지고 무엇인가를 성취해야한다는 환상에서도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의지력으로 해결하려고 하지말고 환경적인 한계를 받아들이고 그 한계 내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추구하자. 그러나 그 추구를 너무 강하게 할 필요는 없다. 삶이 가져다주는 것들을 호기심과 열의로 헤쳐나가면 올바른 방향을 찾으며 스크레스와 불안에서 크게 벗어난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결코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의 삶과 비교하면 안된다. 이 비교라는 행위의 전제는 동일성이다. 동일한 어떤 가치기준으로 비교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너무도 다채롭고 복잡하기 때문에 서로다른 삶을 동일한 가치기준으로 비교하는 것은 불안과 걱정, 시기심만 키워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놓칠 가능성을 높인다.
자신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진정한 지혜가 필요하다. 이것이 진정한 앎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앎'은 알려고 노력하는데 있지 않다. 또한 이 진정한 '앎'은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마치 우리가 심장을 뛰게 하는 법을 모르는 것과 같다. 우리는 모르지만 계속하고 있다. 우리는 정확하게 팔을 어떻게 들어올리는지 모른다. 그러나 들어올리고 있듯 말이다. 우리는 우리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모른다. 그러나 진정한 '앎'은 자신을 변화시킨다. 그러나 우리의 제한된 의식은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하는지 인지하기 힘들다. 충분한 어느정도 인식가능한 수주에서야 자신이 조금 변한 것 같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진정한 '앎'은 변화 그 자체다. 알았다면 변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인식하고 그것을 깨달았다면 이미 우리 자신은 변화되는 중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세상의 속도로 변화되는 중이다. 이 변화를 의식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오로지 현재 자신이 어떤 태도로 살아가는 것 많이 무의식적으로 쌓이고 임계치를 넘어 우리가 느끼는 변화된 자신으로 나타난다.
현재 자신이 어떤 태도로 삶에 임하는가가 유일하게 의미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