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당하고 떨어진다는 것은 정말 기분이 나쁜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결국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
나머지는 내가 뭔가 가치있고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가 있을 뿐이다.
회사에 지원하고 이성친구를 사귈 때, 우리는 거절당하기도 한다. 때로는 나를 여럿이도 원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거절당하면 기분이 좋지 않다. 여럿이 나를 원하면 기분이 좋다.
누군가에게 필요하다는 느낌은 정말 좋은 것이다. 자신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항상 우리가 필요해질 수는 없다. 삶의 여러 시간들 속에서 필요도 하고 필요하지 않기도 하다.
내가 사회에 필요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할까?
내 자신이 그 자체로 가치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할까?
회사를 다니다 잘리는 경우가 생긴다. 정말 힘든 시간이다.
어떻게 하면 누군가에게 계속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필요하다면 그 사람은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고 그 필요가치가 커지면 가족을 안정적으로 부양할 수 있다.
자신의 필요가치를 끊임없이 증명하고 만들어내야하는 빠른 변화의 시간속에서 어떻게 살아야할까?
우리는 계속해서 불안하고 두렵다. 그 근본적 원인은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찾지 못해서이다.
내가 왜 존재해야만 하는가?
자존감 또는 존엄성(나는 이 단어를 더 좋아한다)은 이 질문으로부터 파생된다.
우리는 이 세계속에서 왜 존재해야만 하는가?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가 없다면 존엄성의 그 근본가치는 뿌리부터 흔들리게 된다.
사람은 이 이유, 즉 삶의 의미를 반드시 추구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이 이유를 찾는 방법으로는 주변 사람들이 있다.
사회속에서, 가족속에서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는다.
나는 아버지이고 아들이고 부장이고 싸이클 동호회 회원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구성된 언어적 구조물들이다. 그 내부의 내용적인 것들은 실로 매우 특수하고 방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자신의 존재의미를 강하게 찾으면 그 사람은 강한 사람이 된다.
가족, 회사, 모임 등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고하게 하면 책임감과 함께 자신의 필요성이 명확해져 삶의 의미가 생겨난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진정으로 자신의 존재 의미인가?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핵가족화와 이직률 상승, 모임의 감소 등을 생각하면 전 사회는 무언가 인간관계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한다.
자기 자신의 의미를 다시금 재해석하고 재규정하는 시간이 도래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세상에서 어떤 서사를 가지고 살아가는가?
알 수없는 미지의 삶속에서 어떻게 부유하지 않고 굳건히 버티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고통스럽다. 삶은 정말 지독히도 고통스럽다.
이 끊임없는 고뇌. 내 자신을 찾고자 하는 노력과 현실적 한계.
우리는 여기서 도대체 무엇을 하는가?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사실 곰곰히 생각해볼 때, 이 삶이라는 물자체는 이해될 수가 없다.
그리고 나라는 이 말을 하는 언어적 구조물은 본질적으로 구조적, 언어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정보의 밀도는 실수와 자연수의 밀도차처럼 다르다.
현실은 꽉차있는 반면 우리의 인식구조는 자연수처럼 나열가능하다.
설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현실을 모두 담을 수 없다.
우리는 이 삶에서 무언가를 이해하려고 하는 그 욕구와 충동을 버릴 수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현실적 한계를 마주하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나는 마음의 한 귀퉁이가 매우 두렵다.
받아들이고 놓아버리는데 큰 장애가 하나 있는 것 같다.
놓아버리면 뭔가 잘못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이 세계와 연결고리가 크게 끊길 것 같다는 두려움이 든다.
무언가를 잡아야할 것 같은 이 느낌이 있다.
이 두려운 느낌을 나는 버려야하는 것일까? 아니면 내게 남은 현실적 보호장치인가?
그냥 산다는 것. 그것은 참 아름다운 것 같기도 하고 두려운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잘살고 싶고 남들과 내 자신을 비교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내가 지금 내 수준보다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언가 방법을 찾고 싶다. 지금의 내 위치보다 더 높은 위치로 가고 싶다.
명예와 재산은 우리에게 많은 기쁨을 준다. 사회 속에서 증명되는 가치이기 때문인 듯 하다.
명예는 사회적으로 인정된 필요성이며 재산은 자신을 돈을 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의미있는 존재가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환가능한 물질이 없다면 의미가 없다. 소비가 의미를 만든다.
소비하지 못하는 존재는 자본주의 체계내에서 거의 자리가 없다.
나는 옷을 사고, 밥을 사고, 여행을 산다. 이것이 삶이다.
옷, 밥, 여행. 왜 나는 사는가? 왜 나는 이것들을 사는가?
산다는 것은 사는 것이다. 삶은 무언가를 사는 것이다.
이것이 자본주의적 삶의 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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