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내게 상처 줄 수 없다.
내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

나는 지금까지 세상이 나를 힘들게 하는 줄 알았다.
'나를 둘러싼 환경들이 변해준다면 나는 더 행복할 텐데'
하지만 정말로 나를 힘들게 한 것은 나 자신이었다.

세상에는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SNS 속에서 사람들은 모두 행복한 것만 같다.
거리의 사람들은 모두들 즐거운 것만 같다.

끊임없이 나를 남과 비교하며 괴롭힌다.
왜 나는 저만큼 하지 못할까?
왜 나는 이렇게 행복하지 못할까?
왜 즐거운 일은 내게 찾아오지 않는 것일까?

내가 무엇이 부족한 걸까? 적극성이 부족한가?
뭐라도 시도해야 하는데 무엇을 시도해야 하나?
나는 게으른 걸까?
남들은 여행도 가고 취미도 가지는데 나는 왜 그런 게 없을까?
나는 내 삶을 잘못 살았나?

끊임없이 나를 탓하며 나를 비판해왔다.
나는 내가 부족하고 내가 더 열심히 해야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지만 열심히 해도 그 부족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나는 그저 내가 모자란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내 자신이 부족하고 열등감에 시달렸고 부족한 것들이 내게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부족한 것은 내가 나 자신을 충분히 사랑해주지 못했던 것이다.

나 자신을 끊임없이 생각으로 괴롭히면 내가 더 잘하고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끊임없이 채찍질하면 내가 그래도 좀 더 열심히 해서 더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 습관은 하지만 이제 나를 더 갉아먹기만 했다.
나를 더 힘들게 했고 고통스럽게 했으며 급기야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 상태가 왔다.
이 극심한 무기력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더욱더 채찍질했다.
'이러다간 너 정말 큰일 나'
'이렇게 살다 간 사회에서 도태될지도 몰라'
'남들은 더 능력 있는데도 더 열심히 하는데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하지만 그럴수록 이상하게도 내 마음은 더욱 괴롭고 그전에는 쉽게 하던 일도 더욱더 두렵고 하기 싫었다.
나 자신이 나에 대해서 파업을 선언했다.

나는 당황했고 노사협상에 들어갔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
대답이 없었다. 내가 스스로 알아내라는 식이었다.

나는 몇 주간 이 극심한 무기력에 고생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처음엔 나 자신에게 우울증이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확하게 우울증도 아니었다.
이 상황을 빨리 타개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던 중 나는 데이비트 호킨스 박사의 '내려놓음'이라는 책을 읽었다.
책에서는 걱정, 근심, 두려움의 생각에 집중하지 말고 그 생각의 근본 감정을 찾아보아야 한다고 했다.
생각은 감정의 핑계일 뿐, 그 생각들을 일으키는 근본 감정의 뿌리를 찾아야 한다.

내게 이 극심한 두려움, 걱정, 불안을 일으키며 무기력하게 만드는 그 근본 감정은 무엇일까?
그렇게 카페에서 조용히 생각을 하면서 발견한 내 근본 감정은 내 자신에 대한 증오였다.

과거에 했던 내 실패의 기억들은 나를 이따금 찾아오며 내 마음을 짓눌렀고,
그 기억이 올라올 때마다 나는 내 자신을 자책하고 후회하며 부족하다고 나를 학대했다.
나는 부족해. 나는 못할 거야. 나는 안돼.

이런 사고방식은 끊임없이 나를 힘들게 했다.
나는 내 자신을 이제 그런 생각 습관을 버리고 실패를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부족하기도 하고 실패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 나는 가치 있고 괜찮은 사람이야.
괜찮아. 앞으로도 실패해도 괜찮아. 대단하게 잘할 필요 없어.

나를 힘들게 한 건, 내가 너무도 내게 바라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자기애가 너무 커서, 오히려 그 나를 짓눌렀다.

나는 내게 큰 기대를 이제 하지 않기로 했다.
그 기대가 오히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고,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내 자아의 욕심이다.

못해도 괜찮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나를 더 이상 소진시키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자.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과거는 이미 현재에 반영되었고 미래는 현재가 쌓여 다가오는 것이다.

내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믿어주자.
그리고 그 어떤 실패도 배움의 과정이다.
실패하는 나를 용서하자.
나는 걷는 법을 배우는 아이이자, 그 아이의 부모다.

끊임없이 넘어져도, 또 일으켜주자.
지금 넘어지는 것은 앞으로 성장해서 더 잘 걷기 위해서 연습하는 것이니까.
부족해도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자.

하기 싫고 무기력한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용서하자.
괜찮다. 지금까지 고생했다.
내가 칭찬도 안 하고 항상 모자란 점만 지적하고 얼마나 외로웠을까?
나는 내 자신이 안쓰럽고 미안했다.

앞으로는 이렇게 나를 힘들게 안 할게.
조금 부족해도 용서할게.
앞으로 나이질 나를 내가 믿을게.

나는 나를 믿지 못했다.
끊임없이 생각으로 나를 채찍해야 움직이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것이 나이다.

오늘부터 나는 나를 믿는 실험을 해보려고 한다.
나에 대한 비판을 멈추고, 내가 스스로 자연스럽게 움직여줄 것을 믿어보려고 한다.
조금 두렵기도 하다.
나태해지고 게을러지지 않을까?

용기를 내서 나를 믿어보려고 한다.
조금 두렵지만 나는 결국은 이 길이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내 자신을 존중하는 길을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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